[책속의 명문장] 인류 역사를 압축한 말 "신은 망했다"
[책속의 명문장] 인류 역사를 압축한 말 "신은 망했다"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1.19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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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김태관 글 / 홍익출판사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 / 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 / 신은 망했다.’

장자의 사상을 통해 우리 삶을 되돌아보는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홍익출판사.2012)에 소개된 이갑수 시인의 <신은 망했다>는 시다.

책은 이 시를 통해 장자의 사상으로 나아간다. 단 3줄의 짧은 시에 창세 이후의 인류 역사가 압축 파일처럼 담겨 있다고 평한다. 신이 만든 시골은 자연이며 이는 장자의 주요 사상인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무위(無爲)’라는 것. 이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책 <말케의 수기> 첫 대목을 빌려 지혜의 불빛을 낮출 때라 강조한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도시로 몰려든다. 하지만 도시에서 사람들은 죽어 나간다.”

막연하다. 무슨 말일까. 답은 책에 실린 장자의 ‘천지편’ 우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초나라에 놀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채소밭에서 일하는 노인을 보았다. 노인은 굴을 파서 만든 우물에 내려가 항아리에 물을 길은 뒤에 다시 올라와 밭에 뿌리는데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 자공은 그걸 보고 힘들이지 않고 하루에 백 이랑의 밭에 물을 댈 수 있는 기계인 ‘두레박’을 사용하라 권했다. 이에 노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노인의 말에 숨은 뜻을 알아챈 자공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못 했다는 이야기다. 뭐라고 했을까? 아래는 노인의 대답이다.

“내가 우리 스승에게 이런 말을 들었소. 기계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를 써본 자는 반드시 기계에 마음이 사로잡히는 법이라오. 기계에 사로잡히면 뭔가를 꾀하려는 마음이 들어서 순수하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하면 정서가 불안해진다오. 정서가 불안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는 법이라오. 내가 두레박을 모르는 게 아니라 도를 거스르는 게 부끄러워서 쓰지 않을 뿐이오” -170쪽

저자는 장자가 아주 먼 옛날에 이미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부리게 될 것을 내다본 셈이라 해석했다. 다시 말해 인간 지혜의 과용이 신이 만든 자연과 나아가 인간을 파괴하고 있다는 말이다.  기계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괴물이 된 건 사실로 보인다. 스마트폰의 상용으로 우리 기억의 범주도 점차 단순화되고 있지 않은가. 전화번호 수십 개를 줄줄 외던 삐삐시대를 떠올려보자. 외울 수 있는 전화번호를 헤아려 본다면 답이 빠르겠다.

책은 자연을 거스르는 인간의 모든 지혜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인간을 옭아맬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렇다고 지혜로 비롯된 문명의 이기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지혜의 불빛과 자연의 별빛이 조화를 이룰 때가 인간에게 가장 이롭다는 뜻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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