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일이?] 중국판 ‘발가락이 닮았다’?...닮은 꼴 소설
[책속에 이런일이?] 중국판 ‘발가락이 닮았다’?...닮은 꼴 소설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1.19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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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글 최용만 옮김 / 푸른숲

[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김동인 작가의 <발가락이 닮았다>는 아내를 의심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아내와 낳은 아들이 과연 자신의 자식인지 의문을 갖고 샅샅이 유사점을 찾는다. 그러다 닮은 구석 하나를 발견하는데 바로 발가락이다. 

가족을 위해 한평생 피를 팔아 살아온 ‘허삼관’의 이야기를 담은 중국 소설 <허삼관 매혈기>(푸른숲. 2012)에도 비슷한 장면이 등장한다.

허삼관은 결혼하고 9년 만에 큰 아들 ‘일락’이 자신의 친자식이 아님을 눈치 채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애절한 아버지의 마음이 전해져 가슴 아릿하다.

“성안에서 허삼관을 아는 사람들은 이락이의 얼굴에서는 허삼관의 코를 찾았고, 삼락이의 얼굴에서는 허삼관의 눈매를 읽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일락이의 얼굴에서는 허삼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락이가 허삼관을 전혀 닮지 않았다며 수군거렸다. (중략) 이런 소문이 퍼지고 퍼져 급기야 허삼관의 귀에도 들어갔다.

허삼관은 곧바로 일락이를 불러 세워놓고는 한동안 자세히 살펴보았다. 일락이가 겨우 아홉 살 때의 일이었다. 허삼관은 한참을 살펴봤지만 소문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집 안에 하나뿐인 거울을 가져왔다. (중략) 그런데 얼마 전에 그만 그 거울을 깨버리고 말았다.

허삼관이 그 깨진 거울을 손에 들고 먼저 자기 눈을 보고 다시 일락이의 눈을 보니, 그 눈이 그 눈이었다. 다시 자기 코를 비춰보고 일락이의 코를 보니, 역시 그 코가 그 코였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모두 일락이가 날 안 닮았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닮은 구석이 있구만.’

일락이가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아버지를 보다가 저를 보고…… 도대체 뭘 보시는 거예요?”

“네가 나를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보는 거야.”

“저도 사람들 말하는 걸 들었는데…… 제가 기계 공장의 하소용을 닮았대요.”

“일락아, 가서 이락이랑 삼락이 좀 오라고 해라.”

아들들이 다 모이자 허삼관은 그들을 침대에 일렬로 앉히고는 의자를 당겨 그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러더니 일락, 이락, 삼락이를 순서대로 훑어보고 다시 삼락, 이락, 일락의 순서로 살펴봤다. 세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히죽거렸다. 그렇게 셋이 함께 웃는 모습이 비슷하다고 생각한 허삼관은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다시 한번 웃어 봐. 큰 소리로 웃어보라니까.”

그는 몸을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세 아들은 아버지의 익살스런 동장에 깔깔거리며 웃어댔고, 허삼관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자식들, 웃을수록 서로 닮았네.”

허삼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제까짓 것들이 일락이가 날 닮지 않았다고 하지만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가 서로 닮았잖아. 아버지는 안 닮았어도 형제들이랑 닮았으면 됐지 뭐……. 이락이와 삼락이가 나랑 닮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도 없고,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없잖아……. 일락이가 날 닮지 않은 건 상관없어. 지 형제들하고만 닮았으면 됐지.” (p.53~p.55)

결국 일락이는 허삼관의 부인 ‘옥란’이 결혼 전에 사귀던 다른 남자의 아들임이 밝혀진다. 비슷한 부분이 있는 두 소설은 부조리한 삶을 다뤘다는 점에서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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