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일어날 것만 같은...` 상상만발 그림책
`곧 일어날 것만 같은...` 상상만발 그림책
  • 북데일리
  • 승인 2007.07.2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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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누구나 그런 환상은 품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등을 돌리면 내 뒤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상상 말이다. 유아기 때에는 이러한 공상이 늘 아이와 함께 공존할 것이고, 어른이 된 후에도 가끔은 `정말 그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 마음속에 잠재된 이런 환상을 소박하게 펼쳐낸 책이 있다. 바로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재미마주. 2000)이다.

베란다의 작은 토끼 한 마리가 가족들이 외출한 틈을 타서 과감한 일탈을 즐긴다. 평소의 가족들처럼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주인아줌마처럼 화장도 해보고, 주인아저씨의 재미없는 책도 읽어보고, 아이가 입었던 한복도 입어보며 블록놀이, 낚시놀이도 즐긴다. 기발한 방법으로 롤러스케이트까지 타 본 이 맹랑한 토끼는 피곤한 일상을 마치고, 노곤한 잠에 빠져들게 된다.

동물들도 가끔은 인간과 같은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하는 유아들의 사고에 더하여, 늘 부모님 몰래 해보고 싶은 온갖 일탈의 요소들을 토끼를 통해 보여줌으로서 아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엔 또 다른 재미가 숨어있다. 외출 후 돌아온 가족들이 집안 곳곳에서 토끼의 똥을 발견해내는 장면이다. 이 지극히 현실적인 마지막 장면은 어쩌면 이 책에서의 모든 사건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말하자면 환상이 현실에 가까이 존재하는 듯한 묘한 잔상을 남긴다.

결말을 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그림들을 살펴보니, 거의 모든 컷에 토끼 똥이 마치 펜자국인 양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아마 `글을 읽는` 어른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림을 보는` 아이들은 쉽게 찾았을 것이다.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를 펴낸 이는 반갑게도 우리나라 작가인 이호백 선생님이다. 그는 직접 집에서 길렀던 토끼의 일상과 아이들을 키우며 느꼈던 그들의 심리를 그대로 녹여내어 소박하고 따뜻한 책을 펼쳐냈다. 생활 아주 가까운 곳에서의 작은 상상이 마치 내 곁에서 일어날 것만 같은 친밀한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작품은 2003년 뉴욕타임즈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으며, 그 이전에 스위스 바젤에서 개최된 `국제어린이도서협의회, IBBY`에서 지난 50년간 가장 우수한 어린이 그림책에 뽑히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는 저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호백 선생님은 그림책 작가이자 출판사 `재미마주`의 대표이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재미마주`에서는 한 해 평균 3권정도의 책을 출간한다는 점이다. 한 권 한 권의 책을 장인정신을 가지고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책의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는 `재미마주`의 이러한 이념은 출판사는 물론이지만 책을 고르는 부모들 또한 한 번 쯤 생각해 볼 일이다.

최근 유아들에게도 독서열풍이 불면서 집집마다 아이의 독서량, 그리고 소장 도서 권수를 늘려주려는 노력이 거세다. 아이의 책장에 전집이 몇 질이 있는가도 주요한 관심사. 만약 아이의 책장이 허전하면 부모 마음 또한 허전해져 책장 늘리기에 골몰한다. 안타까운 사실은 정작 집에 있는 책을 읽어주기에는 소홀하다는 것.

하지만 생각해보자. 좋은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어주고 활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말이다.

실제로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에는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이를 통해 아이는 스케이트와 한복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책을 읽고 동물원에 가서 토끼 똥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해 본다면, 아이들에겐 정말 더 할 수 없는 독후활동이 될 것이다.

책을 많이 읽히는 것보다 정말 값진 책을 찾아 그 안에 숨은 면면들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처럼 책을 접하는 부모와 아이들의 안목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출판사들도 책 한 권 한 권을 장인의 마음으로 이 땅에 내보내게 되지 않을까.

[신주연 시민기자 snow_fores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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