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떠나는 남자 "삶을 스쳐가는 여행자"
매일 떠나는 남자 "삶을 스쳐가는 여행자"
  • 북데일리
  • 승인 2005.09.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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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곳에도 머무르지 않는 남자, 지구라는 별에 잠깐 소풍왔다가 떠난 파트릭. 그는 죽음으로써 `떠남`의 의미를 완성시켰다.

`매일 떠나는 남자`(2005. 현대문학) 파트릭은 프랑스에서 가장 우울하기로 유명한 도시 캉에서 살고 있다. 그가 거처하는 곳은 조그만 원룸이다. 그의 원룸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처럼 살림살이 하나 제대로 없다. 침대 대신 방 구석에 메트리스만 깔고 자며 이사올 때 하얀 페이트로 칠해져 있던 벽은 못 구멍 하나 뚫리지 않은 그대로다.

그의 직업은 카지노 업무 보조원. 언젠가는 그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수입원을 마련하는 중이다. 아직 언제 어디로 어떻게 떠나갈 지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떠남에 대한 준비는 완벽에 가깝다. 가방 매장에서 하루를 투자해 여행용 가방을 고르고 세계 각지의 여행 안내서를 꼼꼼하게 모은다. 약장사를 방불케 하는 칼 장사의 설명을 듣고 일명 람보 스타일의 다목적용 칼을 구입한다.

그리고 병원으로 달려가 세계 각지의 유행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예방 주사를 찔러 넣은 뒤 크고 작은 후유증에 시달린다.

몸과 마음을 여행용 가방에 싣기 시작한 지 40여년, 하지만 파트릭은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 그저 여행 준비물이 가방을 채울 때면 혼자 화장실 거울 앞에서서 자신과의 대화에 열중할 뿐이다.

가끔 그의 이웃에 사는 파스칼이 입버릇처럼 "사람답게 살자"며 술을 권하면 받아주기도 하며 사란냐란 여자와 육체적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란냐가 파트릭 자신의 아들을 낳은 뒤 훌쩍 떠나버리자 그는 20년이 넘게 살던 원룸을 나와 호텔에 머무른다.

그리고 여행 경비로 모아 놓은 21만 유로를 자신이 일했던 카지노에서 통째로 날려버리고 호텔 방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시신은 유전학자가 되어 달나라 연구 여행을 떠나는 그의 아들에 의해 달에 뿌려진다.

작가 로랑 그라프(Laurent Graff)는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예 작가로 `매일 떠나는 남자`는 그의 최근 소설이자 4번째 작품이다.

그는 전작 `행복한 나날`의 주인공 앙투완을 통해 그려냈던 삶에 대한 냉소주의와 권태로움 그리고 앙투완이 말기 암 환자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사랑과 죽음의 방식을 `매일 떠나는 남자`로 옮겨왔다.

현대문학은 출판 기획의도에서 "로랑 그라프는 생활 속에 보일 듯 말 듯 녹아 있는 비극성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분자분하게 들려줌으로써 자기 자신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남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덕분에 우리는 시시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상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고 평가했다.

이 책을 접한 독자는 "분명 이 소설은 너무 많은 해석과 너무 많은 감정을 만드는 제법 괜찮은 소설이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진지하게 쓰여지진 않았지만 마음 속 깊은 무언가를 제대로 건드리는 책이다. 몇몇 문장들은 아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피력했다.
(아이디 artfrog76)

"트렁크는 한결 고전적이다. 트렁크는 전통적으로 여행자를 위한 액세서리이며 떠나가는 사람을 구별해주는 결정적인 단서다. 손에 트렁크를 들고 있다는 것은 부릉부릉 발동이 걸린 오토바이에 올라앉는 것과 마찬가지다."(본문 중)

"내 주검을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행복하게 죽을 것이다, 세상의 다른 쪽 끝에서. 뱃사람들이 바다에서 죽듯이, 배우들이 무대에서 죽듯이, 자동차 레이서들이 자기 자동차 핸들 앞에서 죽듯이."
(본문 중)

"우주복을 입은 다음 나는 처음으로 달 표면을 밟았다. 나는 느리고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내 양 팔은 진공상태에서 흔들거렸다. 기지 건물로부터 충분히 멀어졌을 때 나는 밀봉상자를 꺼내 장갑 낀 두 손으로 잘 잡은 다음 상자를 열었다. 천체간의 무중력 상태 속으로 대단한 여행가이며 영원한 몽상가, 늘 다른 세계를 동경하던 모험가인 내 아버지의 뼛가루가 흩어졌다. 희뿌연 연기가 빛의 스펙트럼처럼 우주 공간으로 솟아올랐다가 천천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으로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완벽한 떠남을 완성시킨다."(본문 중)

로랑 그라프의 소원 한가지 "삶의 현장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며 주어진 명이 다할 때까지 오래 살고 싶다"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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