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 이런일이?] 오류 찾아내는 독자, 작가는 등골 서늘하다
[책속에 이런일이?] 오류 찾아내는 독자, 작가는 등골 서늘하다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5.11.11 15: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안정효 글/ 모멘토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기억은 결코 확인을 이기지 못한다.” “나는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고 확신한다.” 둘다 같은 맥락의 말이다. 전자는 소설가 안정효의 말이고 후자는 여행가 한비야의 말이다. 아무리 또렷한 기억이라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소설가 안정효가 기억에 기대어 쓴 글 때문에 받은 편지 이야기가 있다. 확인을 거치지 않아 생긴 일이다. 독자들의 날카로움은 때론 소설가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들춘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당시 안정효는 열 살이었다. 그때 기억을 소재로 지은 소설이 <은마는 오지 않는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경기도 연천의 한 여성 독자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은마>의 배경이 된 금산리와 비슷한 마을에서 살았는데 그 동네에는 금산리의 피난민 여자처럼 스웨터를 입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스웨터는 도시 여성이나 입었던 비싼 옷이었고,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이 갑자기 어색하게 여겨졌다는 내용이다.

그는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모멘토.2006)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밝히며 “이렇듯 스웨터 하나 때문에 소설의 성실성에는 커다란 구멍이 난다.”고 술회했다. 작가의 말처럼 기억은 결코 확인을 이기지 못한다.

실제 독자들의 날카로운 시선은 글쟁이들의 뒷덜미를 서늘하게 만든다. 책에서 소개한 소설가 모트가 기록한 내용만 보더라도 짐작이 가능하리라.

'작가가 뉴욕에서 유럽으로 가는 여객선에 성탄절 전날 매혹적인 젊은 남녀를 태운다고 가정하자. 여기에 우연을 더해 서로를 이해하면서 사랑을 시작하는 소설을 쓸 수 있다. 이런 내용이 출간된다면 어느 날 어느 독자가 연감을 찾아보고,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 선택한 해의 성탄절을 전후해 정말로 뉴욕에서 유럽으로 떠난 여객선이 있었는지를 확인한다. 심지어 당시 날씨까지 확인할지 모른다.'

이 같은 일련의 내용은 작품에 등장하는 사실들이 철저한 검증을 통해 창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상상력이라는 허구에 기대어 확인을 거치지 않은 이야기에 독자들은 속지 않는다. 허구를 현실감 있게 속이려는 작가와 속지 않으려는 독자 사이에는 늘 긴장이 존재함을 기억해야 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