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베트남에도 `신데렐라`가 있다?
일본, 베트남에도 `신데렐라`가 있다?
  • 북데일리
  • 승인 2005.09.21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콜레트 다울링(Colette Dowling)은 "여성의 내면에 억압된 태도와 불안이 뒤얽혀 자신의 창의성과 의욕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일종의 미개발 상태로 묶어 두는 심리 상태를 신데렐라 콤플렉스"라고 정의했다.

다울링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특징은 의존성, 두려움, 무기력, 결혼에 대한 경제적이고 정서적인 집착 등을 파헤쳤던 것으로 유명하다.그녀는 "여성은 어릴 때부터 신데렐라가 되기를 꿈꾸며 이루어지지 않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태가 깊어지면 이같은 심리 상태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다울링은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원인을 아빠의 귀여운 딸로 키워지는 어린 시절의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으며, 여자 아이들이 추구하는 전형적인 여성의 삶이 신데렐라 이야기에 기본 바탕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2005 산처럼)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등장인물과 사물들 속에 숨겨져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전 세계적으로 1천여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세기 후반 콕스라는 이름를 가진 여자가 모은 신데렐라만 해도 345종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어린 시절 동화책을 통해 알고 있는 신데렐라는 프랑스의 동화 작가 샤를 페로가 각지의 민담들을 모은 다음 자신의 스타일로 고쳐 만든 것이다. 여기에 디즈니 영화사가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유통시킴으로써 이것이 신데렐라의 표본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책은 신데렐라의 등장인물에 대한 분석부터 기존의 상식선을 벗어나고 있다. 저자는 신데렐라의 계모는 사실상 친어머니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아이의 눈에 보여지는 어머니는 천사의 이미지와 마귀할멈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피다가도 어떤 일을 계기로 순식간에 자신의 아이를 위협하는 가공할 위력의 소유자로 보고 있다.

특히 계모라는 설정은 친아버지와 딸 사이에 오가는 사랑을 방해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가족간의 갈등을 야기시키는 것으로 해석했다. 또 일반적인 동화에 자주 등장하는 마녀나 마귀할멈과 같은 존재들 역시 계모와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신데렐라를 끊임없이 질투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언니들이지만 사실상 질투의 주체는 극중 화자라고 분석했다. 극중 화자가 자신의 생각을 등장인물들에게 투사(投射)함으로써 이야기의 갈등 관계를 객관화시키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보았다.

민담과 동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의 하나가 폭력성이다.

일본의 신데렐라에서는 언니를 통에 집어넣고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이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콩쥐팥쥐를 비롯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의 신데렐라는 언니의 살을 발라내 젓갈로 만든다.

이같은 잔인한 폭력성은 신데렐라의 주제와 연결된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폭력성이 자리잡게 되며 그같은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약자들로 하여금 폭력을 피하거나 혹은 부분적으로 폭력성을 드러냄으로써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신데렐라는 계모와 고아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잔인함과 비정함 속에 끝없는 노동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기도 했다

특히 어린이들로 하여금 신데렐라를 통해 인격적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과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 신데델라 이야기는 인간의 내적인 성숙을 지향하는 드라마로서 기본적인 인간 관계에서 야기되는 갈등을 보다 안정적인 사랑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 페로는 자신만의 신데렐라 스타일을 창조해냄으로써 여성이 결혼을 통해 사회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나아가 사회의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렸다.

신데렐라의 언니들이 왕자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버리는 것 또한 여자들의 관계가 남자의 중재없이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데렐라를 돕는 대모 요정의 존재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녀는 새어머니와 모든 면에서 반대급부의 성향을 띠며 물심양면으로 신데렐라를 돕지만 밤 12시만 되면 유리 구두만 남긴 채 모든 것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오로지 왕자만이 신데렐라의 변화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신데렐라의 핵심 요소인 유리구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의 구전 민담에는 가죽 구두로 묘사되어 있었으나 가죽이 프랑스의 고어로 vair(베르)이고 발음이 유리를 뜻하는 verre와 유사해 잘못 표기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또 다른 의견은 가죽 구두보다는 유리 구두가 훨씬 멋있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수정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전래 동화 `콩쥐팥쥐`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콩이 주인공의 이름인 바로 `콩쥐`로 나온다.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는 신데렐라가 잿더미에서 콩을 골라내는 것으로 나왔으며 러시아의 신데렐라인 `아름다운 바실리아`에서도 콩을 골라내는 부분이 나온다. 학자들은 이같은 행동을 선과 악을 구분하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

신데렐라가 작은 발로 자신만의 유리 구두를 가졌듯이 콩쥐 역시 작은 발의 소유자였다. 반면 팥쥐와 그녀의 어머니는 큰 발로 인해 무시를 당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콩쥐에게 음식을 주는 하늘의 소는 자식에게 젖을 주는 어머니와 비유되며 종국에는 4마리의 소가 팥쥐를 갈갈이 찢어죽인다는 설정을 통해 어머니의 영혼이 복수를 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국문학자들은 `콩쥐팥쥐`가 지난 1920년대와 30년대 사이에 전래되었던 계모이야기와 외국으로부터 수입된 신데렐라 이야기가 합쳐져 구전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저자인 주경철(서울대) 교수는 "그간 신데렐라 이야기를 읽으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던 의문들을 나름대로 정리해보고 싶었다"면서 신데렐라와 조금이라도 관련되는 주제라면 경계선을 긋지 않고 수록했다고 전했다.

책을 접한 독자는 "책의 내용이 무리수를 많이 두고 있지만 민담의 풍부한 세계와 더불어 어릴 적 열광의 대상이었던 신데렐라를 다시 읽으면서 이리저리 재보는 즐거움에 한껏 빠질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진 = 표지, 신데렐라 애니메이션 이미지> [북데일리 정문아 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