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풀 뜯어 먹는 동물에 맞춤 독 생산', 식물의 동물 사냥
'내 풀 뜯어 먹는 동물에 맞춤 독 생산', 식물의 동물 사냥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5.10.28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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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페이퍼=정미경 기자] 종종 동물들의 집단자살 소식이 뉴스에 뜬다. 그 중 레밍(나그네쥐, 설치류)의 집단자살 소식은 자주 등장한다.

레밍은 왜 갑자기 떼로 죽을까? 한창 개체수가 급증했다가 이듬해가 되면 거의 완전히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레밍(나그네쥐)은 학명이 Lemmus lemmus(레무스 레무스)로 보통 ‘노르웨이레밍’이라고 한다. 레밍은 매일 자기 몸 무게의 10배의 풀을 먹어치운다. 서너 주가 지나면 2세대가 태어난다. 레밍의 수가 폭발적으로 는다. 그러다 갑자기 레밍의 사체가 즐비하다. 집단자살처럼 보인다.

'레밍의 집단자살'은 1954년 ‘진짜 야생의 모험’이라는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서로 밀리고 부대끼면서 대열을 이루어 나가다 마치 황홀경에 빠진 것처럼 절벽을 넘어 바다로 잇달아 떨어진다. 이 영화 때문에 '레밍의 집단 자살'이라는 표현이 유명해졌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은 레밍이 삶에 염증을 느껴 자살을 한다는 식의 설명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절벽에서 뛰어내린 레밍은 왜 병에 걸리거나 허약한 개체가 많을까? 왜 갑자기 대량으로 익사하는가? 살아남은 레밍들은 또 왜 췌장의 크기가 3배로 커졌는가? 이에 대한 생물학자의 답은 이렇다.

실은 레밍을 죽게 한 건 바로 '풀'이다. 레밍이 즐겨먹던 풀이 자기방어를 위해 적의 소화를 방해하는 물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식물은 레밍의 몸에 들어간지 30시간이 지나면, 단백질 분해작용을 방해하는 특수한 독을 분비한다.

래밍의 개체수가 가장 많은 ‘레밍의 해’ 같은 경우 독은 최고 수준을 유지한다. 풀은 맛이 없어지고 레밍은 더 좋은 풀을 찾아 이동한다. 하지만 주변엔 독초뿐이다. 그럼 얘기는 끝난 거다. 그런데 췌장은 왜 커질까?

식물의 독은 트립신 저해물질이다. 이것은 단백질을 소화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트립신 효소의 활동을 저해한다. 트립신은 췌장에서 분비된다. 트립신이 작용을 못 하게 되면 췌장은 더 많은 트립신을 생산한다. 과부하가 걸린 췌장은 평소의 3배까지 커진다.

풀들은 적의 수가 많아지면 독을 만들어 방어한다. 하지만 풀들은 레밍이 과다 번식하고 나서 일이 년 뒤에는 독 생산을 다시 낮춘다. 이렇게 해서 독 생산에 투입했던 자원을 생장과 증식에 투입한다. 이처럼 식물들은 자신을 물어뜯는 게 누구인지를 감지하고 그에 맞는 독을 만들어낸다. (p.149~p.157)

자연과학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작가인 폴커 아르츠트 쓴 <식물은 똑똑하다> (들녘. 2013) 속 ‘식물의 방어작전‘에 소개된 내용이다. 식물들이 적을 퇴치하는 전략이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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