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합리주의자 칼포퍼에 반대함!
비판적 합리주의자 칼포퍼에 반대함!
  • 북데일리
  • 승인 2007.04.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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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책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부글북스. 2006)는 세계적인 과학철학자 칼 포퍼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행한 강연회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 및 정치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한 포퍼의 인식을 다루고 있다. 포퍼는 자신을 합리주의자, 계몽주의의 추종자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러한 개념을 고대 그리스 탈레스의 ‘다원성의 전통’에서 빌리고 있는데 그는 현재 서방세계의 민주주의를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제도이며 전 세계로 전파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국가에게 예속되지 않는 시민의 자유와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열린사회에 반대하는 냉소주의적 역사관 3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헤겔에 의한 “역사가 국가와 인종 끼리 존망을 걸고 벌이는 지배권 투쟁이라고 해석된다.” 라는 민족주의 사관, “역사를 민족 간의 투쟁이 아닌 계급투쟁으로 보는 헤겔 역사관을 재해석한 것으로, 목표는 단 하나, 사회주의가 역사적 당위성에 위해 승리해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급에서 나오는 마르크스적 사관, 이것에 대해 포퍼는 적대적 관점을 갖고 있는데, 17살 나이에 겪은 마르크시즘의 이론적 약점과 개인의 희생에 무관심한 조직의 독단성에 대한 반발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냉소주의적 역사관에서 최악으로 가장 부유한 국가, 미국에 대한 반미주의를 언급하고 있다.

포퍼는 반미주의가 생기는 이유가 미국만큼 부유하지 못한 국가들에서 생겨난 비합리적 태도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필자의 판단으로는 포퍼가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잠시 5장 평화를 위한 전쟁, 슈피겔지와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슈피겔_ 사담 후세인이 핵폭탄을 만들 낌새를 보일 경우 미국이 다시 후세인에 대항해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포퍼 _ 후세인만 경계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모든 문명국에는 특별전담기구가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구시대적 반전론을 주장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한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슈피겔_ 미 국방부 전략가들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팍스 아메리카나(미 제국의 평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일본과 유럽의 경제적 부상을 지연하려고 하는 전략가들 말입니다.

포퍼 _ 그런 사고방식은 범죄에 가깝다고 봅니다. 핵전쟁을 막을 필요성을 경제적 문제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적극 협력하여 그것이 팍스 시빌리타티스(인류문명의 평화)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보면, 포퍼는 미국의 정치제도가 역사상 최고이며, 경찰국가로서의 위상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이 벌인 걸프전을 대량살상무기를 막기 위한 평화의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냉소주의적 역사관을 반영하는 3가지 중 반미에 대한 포퍼의 견해는 동의하기 힘들다. 전 세계를 멸망시킬 핵무기의 확산은 당연히 저지해야 한다. 민족주의 패권주의에 사로잡힌 일부 국가지도자들의 행동은 세계평화라는 명제 앞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누가 미국에게 그것을 해도 된다고 허락했을까.

포퍼는 대량살상무기의 해체에 정치, 경제적 문제가 개입 되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실제 미국 국방부 전력가들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의 질서를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철저히 경제적 실리가 있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포퍼는 팍스 아메리카나가 팍스 시빌리타티스를 실현하기 위한 중간 단계이며, 가장 실용적인 방안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이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제3세계의 빈곤이 미국과 같은 정치제도를 갖추지 못한 정치지도자들의 무능이라는 포퍼의 견해는 시대착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포퍼가 왜 이러한 서구 자유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민족주의에 의한 2번의 세계대전, 마르크시즘이 낳은 동서냉전으로 인한 핵전쟁의 위협, 인류를 멸망시킬 존재론적 위협을 실제로 겪은 20세기 지식으로써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라고 보인다.

또 하나 중요한 논점을 보여주는 서구 문명에 의한 오존층 파괴에 대한 슈피겔지의 질문에 포퍼는 명망 있는 과학자들 역시 실수를 하며, 그것은 아직 정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정확히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세계 지도층들의 견해와 일치하고 있다. 근대 이후 수백 년간 서방세계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면서 지구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쳐왔다.

산업화와 오존층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지금으로써 확실히 알 수 없다는 포퍼의 견해가 틀린 건 아니다. 권위 있는 과학자라도 자연현상에 대해 잘못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도 평소 과학만능 사고를 가졌으면서 대다수 과학자들의 견해를 무시하는 포퍼의 태도는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포퍼는 현대의 지성사를 살피면서, 정상과학과 의사과학의 경계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과학적 논지를 입증하기 위한 4단계 모델 기존의 문제 → 시험적 가설들 세우기 → 실험적 검증을 포함한, 비판적 논의를 통한 제거의 시도들 → 가설의 비판적 논의에서 도출되는 새로운 문제들 이러한 모델을 가지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시즘을 비교하고 있다.

포퍼는 이들 간의 차이는 이론의 반증가능성에 있다고 단언한다. ‘진리에의 근접성’을 위한 반증가능성은 포퍼의 사상의 가장 근간인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엄격한 반증가능성에 스스로의 이론을 과감하게 던졌고 그것을 통과했기에 정상과학으로 인정할 수 있는 반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시즘은 상황에 따라 이론을 수정하고, 세계를 자신의 이론에 맞춰서 해석하는 불합리성, 포퍼에 의하면 이것은 반증이 불가능하므로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과학이론의 진위여부는 세계에 대한 정밀하고 까다로운 해석에 있으며, 모든 이론은‘진리에의 근접성’에 가치가 있으며,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성은 어디에도 없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포퍼의 인식론은 진화론적 사고관에 기반을 가지고 있다. 칸트 철학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인간은 누구나 선험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현대적 의미로 유전에 의해 태어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다는 논리이다. 칸트의 본유 관념이 세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라면, 포퍼의 선험적 지식은 오류가 포함되어 있어 끊임없는 수정을 필요로 한다.

포퍼는 세계에 대한 관찰을 통해 진리를 얻으려는 귀납법에 반대한다. 관찰보다 지식이 선행하며,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갖고 태어난다고 본다. 그러니까 ‘진리에의 근접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부세계에 대한 관찰을 통한 이론의 정립이 아니라, 선험적으로 알게 된 지식으로 과감한 가설을 세우고 관찰을 통한 검증이 더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외부에 대한 적응의 결과로 생겨난 부산물이고, 진화론적으로 보면 눈이 생겨나기 전 이미 세계에 대한 지식이 선행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포퍼에 의하면 세계에 대한 지식은 선험적으로 알게 되고, 선험적 지식을 통해서 외부세계에 대한 관찰이 이루어지는데, 그렇다면 외계지적생명체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인식할 수 있을까? 포퍼에 의하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선험적 지식에는 없으니까. 우리의 눈은 대뇌 뉴런세포에서 인식한 것만을 받아들이며, 그 외의 것들은 아예 인식조차 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한 후 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포퍼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조차 조작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바로 이점이 귀납법을 부정하는 근거인데, 예로써 현실과 구분할 수 없는 꿈을 이야기한다.

감각기관이 사실이라고 여겨져도, 그것이 허상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이러한 논의가 과학이라기보다는 철학적 형이상학으로 보인다. 포퍼는 자신이 실재주의자라고 강조하지만, 우리의 눈에 비치는 세상이 전혀 가능할 것 같지 않는 꿈과 같은 허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포퍼는 감각대신 선험적으로 주어진 지식에 의존하라고 하지만, 평생을 걸쳐 살아온 세상의 객관성, 확실성을 굳이 의심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포퍼의 ‘진리에의 접근성’에 대한 개념에 대해 필자의 의견을 말하자면, 외부세계에 대한 관찰로는 진리에 도달 할 수 없고, 일단 검증된 과학이론 역시 확실한 것이 아니라는 견해는 지나치게 기준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과학이론이 토론에 의한 오류수정으로 발전해 간다고 하지만, 토론을 하는 인간들 역시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논의가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다만, 수학이론과 같이 전 세대에서 수많은 검증을 거쳐 확립된 이론에 대해서는 확고한 진리로 간주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 가도 무방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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