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레이몬드 카버를 읽어볼 것
삶이란? 레이몬드 카버를 읽어볼 것
  • 북데일리
  • 승인 2007.04.0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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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차창을 열고 야트막한 산 사이의 도로를 지나는데 목련이 뻗은 가지를 이기지 못할 정도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짤주머니로 빈 부분 없이 가득 짜놓은 생크림들은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것처럼 불안했습니다.

불안해진 마음에, 운전자에게 당장에 차를 세워달라고 요청한 후, 한달음에 뛰어올라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갈 길이 멀었던지라, 간신히 말을 꿀꺽 삼키고 지나는데, 계속 뒤에서 누군가 잡아끄는 듯했습니다. 봄이었습니다.

저는 일복을 타고 난데다가 끊임없이 스스로 일을 만드는 편이라, 꾸역꾸역 일이 밀려들다가 한순간 산더미처럼 쌓여버리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아직 하지도 않은 일들의 높이와 무게에 눌려 한숨을 쉬기도 합니다. 그럴 때, 누군가 딱따구리처럼 옆에서 잔소리라도 늘어놓으면, 울컥해 한마디하고 말죠.

“Will you please be quiet, please?”

오늘, 여러분들 앞에 놓아드릴 소설은 레이몬드 카버의 <제발 조용히 좀 해요(Will you please be quiet, please?)>(문학동네. 2004)입니다. 이 책을 여러분들께 소개시켜드리려고 마음을 먹고, 책을 읽으면서 문득 레이몬드 카버에 대해 썼던 최영미 시인의 시가 생각났습니다.

어디에 있던 시더라, 계간지 어디선가 봤었는데, 찾을 길이 없더군요. 그리하여, 그래서 집에 있는 계간지들을 모두 뒤졌습니다. 해야 할 일이 무지하게 많은데도, 굳이 미루어가며 계간지들을 뽑았다 다시 꽂았다를 반복하는 제 모습을 보고 저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성과가 있었을까요? 물론이죠. 30분도 채 안 걸렸습니다. 최영미 시인 초반 시집의 출판사를 보고 ‘창작과비평’이다, 감 잡았죠. ‘창작과비평(113호) - 2001년 가을’호에 실린 ‘대화상자’라는 시였습니다. 소개마저 드리지 않으면 정말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보낸 격이 되니, 찾아낸 수고로움을 기념할 겸,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대화상자 - 최영미

레이먼드 카버를 읽으며 나는 그를 지웠다

12월 23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침밥이 소화되지 못한 채 뱃속에서 꾸르륵대고

머릿속엔 전날 헤어진 그의 얼굴이 해석되지 못한 채 걸려 있었다

내가 만난 그의 첫 미소와 마지막 굳은 표정이 겹쳐지고

그가 했던 모든 말들이 돌아누운 가슴속에서 맹렬하게 서로를 부정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그를 사랑할 시간도

미워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레이먼드 카버를 읽고 목욕을 하고

나는 다시 나의 의자에 앉았다

눈 덮인 겨울나무 가지 위에 부지런히 눈을 터는 새를 본다

성탄절날 아침, 내 눈에 잠시 스쳐간 암호 같은 풍경.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멀리서 빛나고

지저귀고

당신을 위해

난 이 시를 억지로 완성하지 않을 거다

언젠가, 기쁨도 고통도 없이

굳은 빵에 버터 바르듯

너희들을 추억하리라.

이 시는 최영미의 시집 <돼지들에게>(실천문학사. 2005)에 ‘굳은 빵에 버터바르듯’이라는 제목으로 레이몬드 카버에 대한 언급만 쏙 빠진 채 실려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레이몬드 카버를 집어넣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요?

저 역시 ‘숨은’ 소설 중 하나로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을 소개해 드리고 있으니 뭐, 할 말은 없지만, 어째 좀 아쉽습니다. 이 시는 극찬할 만큼은 아니지만, 레이몬드 카버를 읽은 사람이라면, ‘레이몬드 카버가 굳은 빵에 발린 버터처럼 잘 들어있구나’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거든요. 저처럼.

예나 지금이나 레이몬드 카버는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연모의 대상인가 봅니다. 소설가 김영하도 그를 고수라고 칭한 적이 있고, 본의 아니게 매주 언급하게 되는 하루키는 그의 소설을 자청하여 번역했을 정도니까요.

하물며, 작년에 타계한 로버트 알트만이 카버의 단편들을 모아 만든 영화 <숏컷>(1993)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갑자기 <숏컷>이 그리워져 방한구석에 쌓여 있었던 93년 ‘로드쇼’와 ‘스크린’까지 뒤지며 어룽거리는 추억을 잡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레이몬드 카버를 접한 건 영화 <숏컷>(1993)이후였습니다. 97년, 나라가 돈을 갚지 못해 끙끙 맸을 때, 그래서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었을 때, 재취업 교육으로 컴퓨터 수업을 받고 오시던 아버지께 국도 없는 점심을 챙겨 드린 후, 거실에 앉아 영화가 슬프다는 핑계로 눈물 콧물 흘리며 봤던 영화였어요. 당시 위축되어 있던 저에게는 공감대가 무척 컸습니다.

얼마 뒤, 원작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학교 도서관을 뒤져 곧 카버를 찾아냈습니다. 그 시절의 유일한 도피처였던 도서관에서, 깊은 상처도 주었지만, 용기 역시 주었던 책이 바로 카버의 단편들이기에 저에게 레이몬드 카버라는 작가는 특별합니다. 상황이 나아진 후로도 저는 그가 창조한 미니멀리즘 세계에 꽤 오랜 기간 빠져있었습니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는 주로 초기작들을 모아놓았는데 모두 스물 두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설가나 영화감독은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카버의 소설은 일부의 독자만 좋아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어떤 친구는 ‘하루키의 족적을 따라 읽다가 하루키에게 낚였다’고도 표현하며 분개하더군요. 한참 웃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소설은 하루키의 유려한 문장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사진을 찍는 것처럼 정확하며, 수식도 비유도 거의 없어 매우 건조하게 느껴집니다. 게다가 절제가 심해, 정말 짧은 소설은 다섯 장도 넘기지 않았는데 끝나버리니 허무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레이몬드 카버의 중기 소설로 이루어진 단편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문학동네. 2005) 역시 나와 있으니, 입에 맞으시는 분들은 장복하셔도 좋습니다.

칼럼이 길어져 다 읽지 않으시고 넘어가실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설핏 보면 카버의 소설들이 별다를 것 없이 너무 담담해서 뻔한 얘기라고 치부해버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힘들더라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응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한, 답답하지만 일상에 갇혀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소설 안 인물들의 모습이 곧 우리의 대견한 자화상이라고 생각하고 읽으시면 언뜻 불어오는 미풍도 다르게 느껴지실 거예요.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은 묵묵히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필터 없이 넌더리나는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므로 읽는 순간 짜증스럽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느껴지는 울림이 대지에 울리는 단단한 북소리처럼 길게 여운이 남으니 고단한 삶에 찌든 분들은 피하지 마시고, 정면으로 삶을 응시해보라고 권해 드립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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