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적 결정론자들이 변질시킨 `IQ`
유전적 결정론자들이 변질시킨 `IQ`
  • 북데일리
  • 승인 2007.04.02 1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데일리]필자는 지금까지도 중학교 때 받은 IQ점수를 기억한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두툼한 시험지를 가지고 와서 문제를 풀라고 하셨다. 언어 능력과 도형이 들어간 수학 문제를 풀면서 너무 어려워서 시간 안에 못 풀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테스트한 IQ 결과를 우연히 교탁위에서 보게 되었다. 다행히도 점수는 평균이상 이었다. 당시 봤던 점수가 평균 이하였다면 커다란 절망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지능의 단선적 서열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IQ로 표현되는 숫자는 한 사람의 전체적인 지적 능력을 얼마나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는지 되짚어 볼 문제이다. 이번에 소개 할 책 <인간에 대한 오해>(사회평론. 2003)는 이러한 IQ 검사의 진정한 실체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저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하버드 대학의 지질학, 동물학 교수로 활동했다. 이 밖에도 고생물학과 진화생물학자 로써 과학사에 대해서 많은 저술을 남긴 대중적인 과학자이다. 저자는 객관성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편견으로 백인남성을 기준으로 흑인, 여성, 빈곤층에 대한 가혹한 평가와 자료의 조작에 대해서 분노 섞인 감정으로 비판한다.

“흑인과 처음 오랜 시간 접촉을 가진 것은 필라델피아에서였습니다. 호텔에 고용된 사람은 모두 유색인종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받았던 고통스러운 인상을 어머니께 도저히 전할 수가 없군요. 특히 그들이 내게 불어넣은 감정은 인간형이나 인간의 고유한 기원에 대한 카톨릭 신도회의 형제애 적 사고와는 상반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두꺼운 입술과 비뚤어진 이를 가진 얼굴, 곱슬머리, 굽은 무릎, 기다란 손, 크게 휘어진 손톱, 그리고 무엇보다도 납색을 띤 손바닥, 이 모든 것을 보며 내게서 멀리 떨어지라고 명령하기 위해 그들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창조론자 아가시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이다. 저자가 이것을 인용한 건, 19세기 당시 백인과학자가 흑인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서라고 보인다. 여기서 아가시는 흑인을 인간이 될 수 없는 하급한 종(種)으로 취급하고 있다.

저자는 노예제도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당시의 사회와 사실을 토대로 가설을 세워야 할 과학자가 말도 안 되는 편견으로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태도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된 이후에는 백인과 흑인이 완전히 다른 종(種)이라는 주장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의과대학 교수였던 폴 브로카는 신체적인 특성을 토대로 흑인이 인간보다 원숭이에 더 가까우며 정신적으로 퇴화했다고 단정 짓기에 이른다.

이어 백인과 흑인, 남성과 여성, 부유층과 빈곤층의 사회적 서열을 유전적 결정론을 통해 정당화하려는 지속적인 시도에 대해 저자는 객관적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 있다.

“노동자와 하녀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수천 명이나 된다. 테스트는 진리를 이야기해주었다. 이런 소년들은 극히 초보적인 훈련 이상으로는 교육시킬 수 없다. 아무리 많은 학교교육으로도 그들을 지적인 유권자나 유능한 시민으로 키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나태함은 인종적인 것이거나 최소한 그들 가계의 고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인디언, 멕시코인, 흑인에서 이러한 유형이 매우 높은 빈도로 발견된다는 사실은 지적 특징 속에서 인종적 차이라는 전체적 문제가 새롭게 인식되어야 하고, 실험적 방법에 의해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 차이는 어떠한 정신문화의 시책에 의해서도 개선될 수 없으리라고 예언한다. 우생학적 관점에서는 그들의 왕성한 번식력이 큰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지만, 현재 그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설득하기는 불가능하다.”

미국의 과학자 터먼은 지능테스트가 인종간의 우열과 IQ에 따른 직업의 적합성, 사회적 지위를 알려준다고 확신한 거 같다. IQ의 사회적 파급은 미국의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심리학자 여크스에 의해 이민제한법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IQ 검사는 왜 이렇게까지 정치적으로 변질되었을까? 저자는 IQ 검사의 변질이 미국에서 고더드, 터먼, 여크스 세 사람의 과학자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IQ의 창안자 알프레드 비네의 원래 의도를 훼손하고, IQ를 선천적인 지능의 척도로써 사용했고 이것을 토대로 흑인, 여성, 빈곤층의 사회적 불평등을 유전적으로 정당화 했다는 설명이다.

IQ 논쟁은 단순히 과학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개입하게 되는데, 이민제한법 통과에서 우생학에 기반한 산아제한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은 막대했다고 지적한다.

IQ 는 과연 한 사람이 갖는 지적 능력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저자는 고더드, 터먼, 여크스의 연구자료를 통해 그 허상을 폭로하고 있다. 그들의 자료는 객관성을 상징하는 수치가 넘쳐나지만, 정작 그 수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선험적인 가설과 편견으로 그들이 원하는 수치가 나올 때까지 자료의 삭제, 조작이 지속적으로 행해졌다고 지적한다.

“테스트에 채택된 일상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가정 또는 두 언어가 사용되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에 관해 비교연구를 하는 데 이 테스트를 이용할 수 없다. 부모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미국 출신 아이들에 관한 연구에서도 이 마지막 사건이 종종 지켜지지 않는다. 다양한 국가와 인종집단에 대한 비교연구는 기존의 테스트로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20세기 초 대표적인 유전자 결정론자였던 여크스의 제자 브리검의 진술이다. 그들로써도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IQ가 선천적 지능의 척도라는 유전자 결정론자의 조작에 의한 잘못된 이론은 독일의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의 이론적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역사에 커다란 과오를 저질렀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이 되풀이해서 부상하는 까닭은 사회정치적인 것으로, 그리 멀리서 이유를 찾을 필요도 없다. 우선 사회적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을 줄이려는 캠페인을 비롯해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려는 에피소드, 축복받지 못한 그룹의 사람들이 심각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거나 권력을 위협하는 시기에 엘리트 지배층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사회변화에 반대하는 한 주장이, 어떤 사람들은 상층에 위치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층에 위치하는 기존 질서가 그렇게 서열화 된 사람들의 선천적이고 불변인 지적 능력의 정확한 투영이라는 주장을 능가할 수 있을까?”

저자의 이러한 언급은 사회체제의 모순이 생물학에 의해 희석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니까, 현재 사회의 부유층과 빈곤층간의 양극화 현상이 상층부에 위치하는 기득권자들 에게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아니라 유전적으로 우수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이 애초에 정해져 있다는 논리가 보다 유리한 것이다.

유전적 결정론은 모든 사회적 현상을 단순하게 만들어 버린다. 열등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어떤 노력을 해도 결코 상층부로 진입할 수 없다는 논리는 얼마나 절망스러운가. 그러므로 기득권층에게 유전적 결정론은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요술 지팡이로 여겨졌을 것이며, 오랜 시간 흑인과 여성에 대한 인식변화에도 여전히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끼치는 건 당연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미국에서 1981년에 출간되었다. 2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IQ로 대표되는 유전적 결정론의 사상은 뿌리 깊게 남아있다. IQ는 여전히 한 사람의 정신적인 능력으로 여겨진다.

물론 요즘의 IQ 검사는 고더드, 터먼, 여크스가 실행했던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측정되지는 않지만, 이론의 적용은 학습장애 같은 특정한 분야에만 사용되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저자는 IQ를 포함한 유전적 결정론은 미래에도 여전히 살아남을 거라고 전망한다.

인간의 가치를 숫자로 환원해서 자신이 속한 인종, 문명, 국가, 집단이 다른 인종, 문명, 국가, 집단 보다 우월함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