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빼기 일은 마이너스 일이라고?
일 빼기 일은 마이너스 일이라고?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12.30 15: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 윤의 <숲 속의 빈터>

[북데일리] 여기 전나무가 가득한 황홀한 숲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숲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숲은 단순한 숲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최 윤의 <숲 속의 빈터>(2003.작가정신)에서는 악몽으로 존재한다. 동거를 결정하고 시골 마을로 이사를 온 젊은 연인에게 짙은 녹색은 점점 공포로 다가온다.

 서울 근교에서 직장에 다니는 민구와 진희는 지나치게 복잡한 도시를 떠나 살기 위한 집을 찾는다. 마을과 조금 떨어졌지만 전망이 좋은 집을 얻고 애완견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목욕탕만 있다면 완벽한 삶이라 믿은 그들은 직접 목욕탕을 짓기로 한다. 도시에서 벗어난 한적한 삶, 그들을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러다 건너편 숲 이층집에서 벌거벗은 남자의 등장으로 그들의 일상은 흔들린다. 남자의 기분 나쁜 행동으로 진희는 점점 혼자 집에 있기가 두렵다. 진희의 말을 믿지 않았던 진구도 직접 목격하고서야 사태를 파악한다. 이상한 건 마을 사람 누구도 이층집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집을 구해준 복덕방과 이장집에서도 잘못 본 것이라고 말한다. 택시 기사도 숲 근처까지는 오려 하지 않고 목욕탕 배수관공사 업자도 방문을 꺼리는 것이다. 마치 모두가 어떤 사실을 함구한 듯 말이다.

 진희의 계속되는 부탁으로 배수관공사를 하러 온 사람은 왜 이 집을 얻었냐고 묻는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무서운 사건에 대해 들려준다. 군인이었던 이층집 남자가 총으로 마을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갔다는 이야기다. 마을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했던 남자는 그 사건으로 토지를 돌려주었다. 하지만 남자는 정신분열로 감옥에서 나온 후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무도 그 집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던 이유다.

 “일 빼기 일은 얼만지 알아요, 젊은이들? 일을 뺏겼다가 일을 다시 얻으면 얼마나 될지?”

 “네……?”

 “다들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영이라 할 테지. 그렇지만 아니야. 마이나스 일이야. 여기서는 그렇게 셈한다구. 결코 메워질 수 없는 마이너스 일이지……” (78~79쪽)

 배수관공사 업자의 말대로 이제 민구와 진희에게도 마이나스 일이 되었다. 정말 그 숲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과거 사건으로 사람들은 이층집과 남자가 나타난 숲과 빈터에는 발길을 끊었지만 그곳이 삶인 민구와 진희는 달랐다. 여관과 친구집을 전전하다 돌아올 수밖에 없다. 남자의 존재는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숲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그저 하나의 빈터에 불과했다.

 ‘몸이 노곤해지는 걸 느끼면서, 우리는 봄이 되기 전에 빈터에 전나무를 심어버리는 것은 어떤가, 그런 얘기를 했다. 늦은 가을 쯤에. 빈터에 나무를 심겠다는데 반대할 사람 있으면 나오라지. 마을사람들은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곳에는 늘 빈터가 있었으니까. 숲 속의 빈터란 수도 없이 널려 있으니까.’ (84쪽)

 최 윤은 90쪽 안팎의 아주 짧은 소설에서 우연이 일상을 어떻게 와해시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그 우연은 과거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전나무 숲이 간직한 과거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현재나 미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민구와 진희처럼 빈터를 메우면 과거는 사라질 수도 있다. 한 번에 메워지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더 메우면 될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일상을 지키려는 의지와 지속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 삶에서 채워야 할 빈터의 존재를 확인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