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소재에 ‘비범'한 시선
평범한 소재에 ‘비범'한 시선
  • 안재동 시민기자
  • 승인 2014.09.10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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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자 산문집 <슬픔은 발끝에서....>
▲ 김은자 산문집

[북데일리] 미국 교포 작가 김은자의 산문집 <슬픔은 발끝부터 물들어 온다>의 표제가 주는 이미지는 얼핏 작가의 '감성'으로 독자의 공감을 소구코자 하는 듯해 보인다. 무릇 책의 이름은 그 책 속에 든 작품들의 성격을 포괄적으로 암시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경우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감성'을 넘은 '형이상학'적 속성까지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수필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높은 수필 작품성과 함께 '가족', '친구', 기타 우리 주위의 '일상'적 이야기를 전개해 가면서 전통 수필의 기법을 구사한 이 산문집은 수록 작품 대부분의 면면에서 그런 점들이 관찰되고 있다.

'짧게 나를 스치고 간 새들'(제1부), '오래 된 문을 밀고 들어가며'(제2부), '혼자 닦는 별'(제3부), '발 삔 자리'(제4부), '편지 속의 먼지들'(제5부), '이상한 유추類推'(제6부) 등 여섯 부에 걸쳐 총 예순 작품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특히 '엄마의 강', '오빠가 없는 사이', '잃어버린 첼로', '칼 갈아주는 남자', '아버지' 등 가족사와 가족 관련 이야기들, '손手', '발足', '젖의 행방', '입술', '안경을 쓰며', '눈과 코와 입의 트라이앵글', '갈비뼈, 24개의 스트링' 등 인체에 대한 사유들, '징', '숲', '별', '문', '똥', '껌', '침', '봄', '거미', '숭례문의 마지막 인사', '농사짓는 마음', '블루 샌프란시스코', '알로하, 빛나고 큰집', '사각의 계절에',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 등 주변 사물 등으로부터 받은 작가의 특별한 인상이 작품으로 잘 승화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 소재들이 우리 주변의 보편적 사물 또는 누구나 겪는 일상생활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은 결코 평범하지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다 알거나 비슷함 그 자체인 '평범'의 '비범'화(化), 동면하고 있는 동물을 누군가가 놀래게 하여 깨우듯 '일상'의 '비(非)일상'화(化), 권태로움과 동격이랄 수 있는 '무료'의 '흥미'화(化) 등으로 그 성향을 압축할 수 있다.

이 책에선 일반 독자 입장에서 바라볼 때 각 작품들이 갖는 제목만으로는 눈길을 쏟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몇 작품을 제외하곤). 그러나 어느 작품이든 한 작품만이라도 읽기 시작하면 그 작품은 물론 다른 작품들까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싶은 충동이 일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작가의 개성적 사유와 이야기를 신선하게 풀어내는 독특한 방식에 기인된다고 할 수 있다.

수필이든 시든 소설이든 문학작품은 물론이고 칼럼, 서간문 등 모름지기 글이란 '감동' 내지 '심도 깊은 공감'이 최고의 가치일 것이다.

특히 이 책 속 김은자 작가의 글들에서 눈에 띄게 느껴지는 특징은 '일상성'의 '특별성'화(化) 내지 '평범'의 '비범'화(化)이다. 예컨대 '징', '숲', '별', '문', '똥', '껌', '침', '봄', '거미' 등을 소재(주제)로 써내려간 작품들에서 쉽게 직감할 수 있듯이 소재가 우리 주위에서 아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다보니, 그 내용 또한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쯤이겠지 하는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겠지만, 막상 읽어보면 그렇지가 않다. 작품 한 편 한 편의 문장과 서술방식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금세 느낄 수 있다.

소리가 산을 넘고 강을 건너는 것은 떨림의 이유이리라. 징은 떨림 외에 다른 언어를 모르는 악기다. 떨림으로 울음을 익혔다가 때가되면 제 몸을 불태우며 더 먼 곳을 향하여 새처럼 날아간다. ― '징' 부분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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