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읊조리다>엔 칠십 명 시인의 시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의 문장들이다. 시의 조각들이 부르는 노래라고 할까. 어떤 문장은 일기 같고 어떤 문장은 편지 같고 어떤 문장은 절규이며 어떤 문장은 눈물이다. 누군가의 시가 아니라 모두의 시처럼 익숙한 시어들도 있고 낯선 시인의 문장도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른 문장과 마주한다. 슬픔을 삼킨듯 건조한 시인의 문장에 울컥한다. ‘서른 살’ 즈음에 누구나 한 번쯤 따라 읽었을 구절이다. 이처럼 이 책엔 한 번쯤 암송했을 문장, 한 번쯤 노트나 핸드폰에 메모했던 문장이 많다. 그래서 반갑고 친근하게 시에게 다가갈 수 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최승자의 삼 십 세, 78쪽)
기존의 다양한 시를 모아 엮은 시집, 시인이나 소설가가 선택한 시를 수록한 책과 달리 <순간을 읊조리다>는 시인의 노래를 일러스트레이터 봉현의 그림으로 담았다. 한 편, 한 편 정성으로 그려낸 시화전 같은 책이다. 누군가는 학창시절에 좋아하는 이에게 고백을 전하고 받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상대가 시에 담긴 은밀한 감정을 발견하는 예리한 이라면 얼마나 달콤한 고백일까. 이른 추석을 앞두고 박준의 문장을 가슴에 새긴다.
‘끝물 과일들은 가난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박준의 환절기, 199쪽)
읽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시란 이렇게 위대하다. 차오르는 달을 기다리는 깊은 밤엔 이런 문은 어떨까. 밤과 둘만의 시간, 밤의 진심을 듣는 시간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면의 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밤은 네가 잠들기를 바란다 밤은 혼자 있고 싶은 것이다’ (황인숙의 밤, 170~171쪽)
시 읽기 좋은 계절이다. 한 권의 시집이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순간을 읊조리다>를 만나보라. 시로 빚어진 영롱한 보석을 발견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