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서 깨어나 나를 찾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 나를 찾다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8.26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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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 산문집 <'나'라는 이유>

"나는 바람의 뼈를 만져 본 사람처럼 내 몸에 울려오는 이 세상의 온갖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다른 세상이었다. 내가 숨을 쉬고 말하고 걸어 다니는 그 모든 감각들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가만히 들려왔다. 나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내 몸으로 모은 것으로 느끼는 세계였다. 나는 울고 있었다. 모든 것이 다 축복이었다. 씨앗 하나가 막 싹을 틔우려고 딱딱한 껍질 안에서 꿈틀거리는 소리마저 그대로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 붓을 들고 캔버스 앞에 앉아 있고 싶었다. 세상을 전부 다 내 그림 속에 불러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가만히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에필로그 중에서
 
[북데일리]<'나'라는 이유>(호미.2014)는 시인이자 화가인 정정화의 첫 산문집이다. 책은 저자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경험한 일상의 잔잔한 에피소드를 실었다. 마음과 몸의 병을 앓고 난뒤,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써 나간 삶의 중간 보고서다.
 
 "한때 인디언의 말을 배우고 싶었다. 알레윹. 알레윹. 인디언의 눈은 늘 아래를 향하고 있다. 그들의 귀는 낯선  발소리를 경계하지 않고 가만히 자기를 열어 언덕 너머 저녁 어둠 속으로 모든 것을 내어준다. 얼굴은 세상 밖으로 내미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햇빛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을 기르고, 머리는 태양을 향해 초점을 맞춘다. 숨결이 혀를 내밀고 기쁜 말이 되어 삼나무 향이 내 영혼을 깨우리라."(13쪽)
 
 저자는 두 아이를 키우고 시인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밥벌이와 그림과 오랫동안 쓰지 못한 글쓰기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글과 그림이 저자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글을 쓰는 일이 아니라면 어쩌면 나는 원예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 나만의 정원을 그림에 옮겨 보고 싶었다. 100호 크기의 유화 캔버스에 유화로 그렸는데, 꼬박 일 년이 걸렸다. 물론 놀다 그리다 말다 했다. 그 정원 속에는 고양이 두 마리도 살고 있다. 항아리와 돌담의 햇살도 들어가 있다. 이제 내가 그 안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43쪽)
 
 책 양면을 가득 메운 유화 그림은 독자로 하여금 정원에 온 듯한 평안을 준다. 크고 작은 꽃들이 담뿍 피어있는 꽃그림은 생생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향기가 날 것 같다. 네 식구가 사는 24평 아파트에서 키우기 어렵다는 수련을 키워 해마다 꽃을 보고 허브와 여러 가지 식물들을 키우는 솜씨는 영락없는 원예사다.

 "그림은 무엇을 어떻게 그리냐가 중요하지만 그림에서 손을 떼어야 하는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장욱진의 그림이 시처럼 압축미가 뛰어난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많은 작가들이 캔버스 앞에서 작품의 끝이 어딘지 몰라 헤맨다. 우리의 삶이 너무 부족해도 쓸모가 없지만 너무 넘쳐도 망가지는 것처럼 그림도 그와 같다."(123쪽)

​ 저자는 그림에 조예가 깊다. 자신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녀 스스로 따뜻해지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녀는 대한민국 회화대전, 나혜석 미술대전, 단원미술전 등에서 수상했고 개인전을 3차례 열기도 했다.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그림 전시회를 가졌다. 

 이 책은 저자가 내가 ‘나’인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터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내일 할 일을 절대로 오늘 미리 하지마라.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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