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은 아픔끼리 위로한다
아픔은 아픔끼리 위로한다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8.25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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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첫 시집<몸붓>

구두닦는 금자씨, 소 키우는 봉수씨, 뽕브라 수정씨, 중앙시장 고무타이어 신은 방물장수 사내, 실업자, 노숙자, 건달,.. 
 
[북데일리]안성덕 시인의 첫 시집<몸붓>(문학의전당.2014)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시편 속 주인공들을 보고 있으면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힘겹게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왜 뜻깊은 집들이에 가난하고 힘든 이웃들만을 골라 초대했을까. 
 
 "지렁이 반 마리가 기어간다/허옇게 말라가는 콘크리트 바닥에/질질 살 흘리며 간다/촉촉한 저편 풀숲으로 건너는 길은/오직 이 길뿐이라고/토막 난 몸뚱이로 쓴다/제 몸의 진물을 찍어/평생 한 一자 한 자밖에 못 긋는 몸부림/한나절 땡볕에 간단히 지워지고야 말 한 획/고무타이어를 신었다/중앙시장골목 어귀/참빗 좀약 사세요 구두 깔창도 있어요/삐뚤빼뚤 삐뚤빼뚤/좌판 위 고무줄을 늘여 쓴다/바싹 마른입에 거품을 무는 듯/붓끝에 진땀을 찍듯/사내가 제 몸을 쥐어 짠다/한 줄 더 써내려/몽당연필 같은 몸 필사적으로 끼적댄다/한 자 한 자 몸뚱이가 쓴 바닥을 지우며 /기억뿐인 다리가 따라 간다/" (몸붓)전문
 
 첫시집의 표제작인 시다. 지렁이 반 마리가 풀숲을 향해 기어간다. 제 몸의 진물을 찍어 땡볕에 한一자를 긋는 몸부림이나  온 몸이 붓인 필사적인 사내의 모습이나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가 파는  참빗 좀약엔 기억뿐인 다리만큼이나 애잔하고 답답한 현실을 보는 듯하다. 시인은 필사적으로 써가는 사내의 삶에서 글쓰기의 운명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몸붓>을 읽다보면 시속 초라하고 쓸쓸한 또 한 사내에 주목하게 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래층 사내'<덜미>의 튀어나온 뒷덜미 말이다. 시인은 이웃 사내에게 마음이 가 있다. 정리해고 된 튀어나온 사내의 뒷덜미가 사내의 목젖 같다.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시인은 자신의 '빳빳한 와이셔츠 깃'이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처지가 처지를 알아보고 아픔이 아픔을 눈치채듯 시인은 고향 친구에게도  마음이 쏠린다.  
 
 "대출금 상환 최고장에/해바라기 그림자도 제 발등을 찍는다는 우사 곁/그가 묵묵히 잔을 건넨다/소름 돋친 오이를 우적우적 씹으며/일없이 소주병에 맺힌 물기를 닦는다/그렁그렁 고꾸라지더라/이제 다섯,아니다 나까지 여섯 마리 남았다/말없이 늘어놓은 사설처럼/ 코뚜레도 없이 꿰인 그의 코가/무너진 봉분보다 더 납작해 보인다."(코 꿰이다)부분
 
 처지가 딱하기는 소 키우는 친구도 마찬가지다. 소고기 수입개방과 사료값 폭등으로 키우던 소를 굶겨 죽이고 늘어난 부채에 코 꿰인 친구의 절망에 공감한다. 한낮에 공원벤치에 앉아 있는 중년 사내, 의지가지없는 타관 백반집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 사내, 시인은 이런 초면의 낯선 사내와의  갑작스런 겸상이 자연스러운 건 사내가 곧 자신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번 시집은 시편마다 삶의 밑바닥에서 신산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 마음이 어둡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시집에 이들을 등장인물로 내세운 건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가난과 외로움을 따뜻이 끌어안아 주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굽은 등을 읽어줄 만큼 속깊은 시선이 드문 세상에 평생 제 몸을 쥐어짜고 살아가야 하는 이웃들의 젖은 등골을 시인은 알고 있다. 시인은 시를 통해 보여준다. 몸붓의 안간 힘으로 세상을 묵묵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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