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그리움, 절묘한 책 이름
미친 그리움, 절묘한 책 이름
  • 신현철 시민기자
  • 승인 2014.08.2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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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태주 시인 그림움에 대한 절절함

[북데일리] 마음은 어디에 사는가를 두고 심각해졌다. 그것이 뇌에 사는지 심장에 사는지 궁금했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저물 무렵에는 마음이 심장으로 이사를 오기도 한다는 것으로. 마음이 세 든 집에 가보았다. 그리움이 독거하고 있었다. - <이 미친 그리움>, 13쪽

스스로 시집 한권 내지 못한 삼류 야바위 꽈당 시인이라는 림태주의 산문집 <이 미친 그리움> (위즈덤하우스. 2014)의 첫문장이다. 림태주 시인의 소개는 페이스북의 유명인사라는 것에 촛점을 맞춰서 하려고 계획했다. 그것만 가지고도 글을 다 쓸 수도 있을 만큼 이슈와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내 그 생각을 버렸다.

림태주 시인은 그리움의 천재이다. 바닷가 우체국에서 그리움을 처음 배웠고 인생학교에서 그리움을 전공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움은 진화하지 않았다. 캄브리아기의 그리움과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그리움과 현대인의 그리움이 똑같다. 이 원초적인 감정은 퇴화하지도 진화하지도 않아서 아프다. 만약 그리움에 대한 노벨상이 있다면 당연히 그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리움과 그림과 글이 같은 어미의 자녀들이라고 들었다. 동사 '긁다'가 그들의 어미라고 했다. 종이에든 동판에든 긁어 새기는 것은 글과 그림이 되었고, 심장이나 마음에 긁어 새기느 ㄴ것은 그리움이 되었단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은 둘 다 대상에 대한 부재와 연민에서 비롯된 행위. 눈앞에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그림으로 표출되고 시로 읊어지는 것. - 13쪽

그리움의 천재 답게 그의 이론은 명쾌하다. 대개 우리는 그리움이란 명확하지 않은 추상적인 어떤 개념으로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의 이론대로라면 그리움은 만져지기도 하고 냄새를 맡을 수 있기도 하고 눈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그리움이란 학문이 과학의 영역과 맞닿는다면 마치 맹장 수술을 하듯 간단한 수술로 그리움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시인의 생각은 다르다. 그리움은 맹장처럼 곪아서 터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라고 한다. 대답없이 흘러 바다로 가서 소멸한다. 시인은 어머니의 그리움을 보고 깨달았다. 그의 산문의 깊이가 어머니에게서 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산문은 텍스트가 빼곡해도 시로 읽힌다. 그리움이라는 단어 자체가 추상으로 농축된 시적 언어 아니던가. 그는 더 이상 시집 한권 내지 못해서 스스로 삼류 야바위 꽈당 시인이라고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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