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 한 집에서 '지지고 볶고'
3대가 한 집에서 '지지고 볶고'
  • 이수진 시민기자
  • 승인 2014.08.19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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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씨 집안 삼대(三代)의 소소한 일상

[북데일리]‘삼대(三代)’.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를 배경으로 쓰였다. 만석꾼인 조씨 집안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각기 다른 가치관 아래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그린 염상섭의 장편 소설이다. 약 100년이 흐른 2014년의 삼대(三代)는 어떤 모습일까.

<지지고 볶고 사랑하고>(바룸.2014)는 평범한 가정에서 3대가 알콩달콩 살아가는 여섯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다음-아고라>에 연재한 ‘나야나’의 글을 주제별로 묶은 책이다. 안양에 사는 평범한 백씨집안의 3대는 염상섭의 삼대와는 달리 재산싸움도 없고, 역사 문제 등 거대담론도 없다. 대신 깨알 같은 평범한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 다 비슷비슷하지만 이 책은 웃음이라는 양념을 곁들인다. 그래서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더 구수하고 맛깔 난다.

300살. 매일 한 솥밥을 먹는 여섯 식구 나이의 합계이다. 84세의 아버지, 76세 어머니, 40대 중반의 동갑내기 부부, 그리고 중고생 자녀들.  요즘 흔치 않은 삼대(三代)의 가족 구성이다. 100세 시대가 열렸지만 가족의 나이의 합이 100세를 넘기기란 쉽지 않다. 기러기 아빠, 독거노인, 싱글족, 주말 부부, 핵가족 등 혼자 또는 둘이 사는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아파트에서 3대가 같이 모여 사는 일도 드라마에나 볼 정도이기에 더 마음이 가는 가는 가족 이야기이다. 

딸아이의 안경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늘 끼도 다니던 안경이 보이지 않아 이상하다고 느낌이 드는 바로 그 순간……딸아이가 눈을 희번득 까뒤집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아내의 방언이 터졌습니다.
“저 썩을 삐~ 렌즈는 또 언제 샀데? 저 삐!! 하여간 뭐 몰래 사는 건.....저 가시나, 삐~삐~”-128쪽

이후에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드라마 같았으면 당장 달려가 현장을 습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부부는 렌즈를 정리하고 안경을 씨고 신발에서 깔창을 꺼내고, 시스루룩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며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렇지만 두 부부는 딸의 20여 분간의 외계 생명체(?)에서 착한 딸로 변신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 모습을 못 본 척 해준다.

사춘기 자녀를 둔 자녀라면 뼛속깊이 공감되는 부분일 것이다. 부모들이 때로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준다는 걸……그리고 부모가 되어서 안다. 내 부모도 내가 어릴 때 완전범죄(?)라고 여겼던 어설픈 거짓과 행동을 부모님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부모님이 얼마나 자신을 마음 졸이며 키웠나를 이해하게 된다.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다.

“맨날 봐도 그게 그거고 뻔한 드라마를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싸우면서 보세요? 나는 딱 하루만 봐도 어떻게 끝날지 다 알겠구만.”
중년의 아들 말 한 마디에 일흔다섯 살 정분순 현인(賢人)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그 아버지는 아직도 아침에 눈뜨면 밥 달라칸다. 팔십 년 넘게 먹어 온 밥맛이 궁금해서 밥달라카겠냐? 연속극도 다 그런기다.”-104~105쪽

행복은 특별한 일이 아닌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깨달음이 전해지는 어머님의 말씀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행복의 무지개는 멀리 가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이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한 집에 사는 가족들 외에 또 하나의 가족들을 소개하는 부분이 감동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는 형, 동서들, 노총각 직장동료, 정형외과 나이든 의사, 동네 할머니들을 소개하는 이야기가 따뜻하게 읽힌다. 나 살기도 바쁜 세상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책은 소박하고 담백하다. 평범한 우리네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를 담았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장황한 삶의 철학은 없다. 마치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만든 음식을 먹고 난 것처럼 몸과 맘이 편안해지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수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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