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소년과 32세 유부녀 파격적 사랑
18세 소년과 32세 유부녀 파격적 사랑
  • 북데일리
  • 승인 2007.03.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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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2~3년 전 미국에 잠시 머물 때, 알게 된 친구 중 ‘마리오’라는 어린 친구가 있었습니다. 잠시 다녔던 랭귀지 스쿨에서 만난 친구인데요, 같은 수업을 듣진 않았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늘 반갑게 인사하는 친구였답니다. 득시글대던 수많은 동양인들의 생김과는 달리 희멀건 얼굴에 코도 꽤 높아 유럽출신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키가 크지 않고 어딘가 순하게 풀어져 보이는 구석이 있어 궁금했었습니다.

아무튼 꽤 긴 시간을 이름도 모른 채 간단한 인사만 나누다가, 어느 날, 그 녀석 제게 “넌 참 비비드한 컬러를 즐기는 구나.”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동안 알록달록한 차림새로 잰걸음으로 다니는 동양학생을 눈여겨봤었나 봅니다. 때는 이 때다, 궁금한 것이 있었던 저는 그 틈을 타, 그의 이름과 어디출신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녀석은 ‘마리오’라며 자기 이름을 말했고, 자기는 수줍게 ‘페루’라는 작은 나라에서 와서 아마 너는 잘 모를 지도 모른다고 얘기했습니다.

세상에, 남한의 열 배도 넘는 페루가 작다니! 잉카문명의 발상지인 페루를!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의 그 페루를! 게다가 좋아하는 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페루 출신인데, 설마, 모를 리가! 그래서, 그 이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 대한 소식이 들려올 때나, 재담꾼인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연락조차 하지 않지만, 나는 남미의 작은(?)나라 ‘페루’출신의 동명이인 ‘마리오’의 순한 웃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전에 제3세계로 분류되었던 남미의 소설은 예나 지금이나 참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마술적 리얼리즘과 환상적 분위기에 취했던 처음만큼 푹 빠져드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남미문학 중 환상 문학은 일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후에는 충분히 남미 대륙이 담고 있는 장르의 구속을 넘나드는 열린 다양성을 느끼며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우뚝 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 중 제가 오늘 여러분 앞에 놓아드리는 소설은 두 권짜리로,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문학동네. 2002)입니다. 원제는 <훌리아 아줌마와 글장이>(Lai Tia Julia y el Ecribidor)입니다. 저는 예전에 도서관에서 <미라플로레스에서 생긴 일>(1990, 사민서각)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읽었었는데, 찾아보니 제목만 변했고, 2002년 다시 나오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잘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역자는 황보석씨로 같더군요!)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18세 소년 마리오와 32세의 훌리아 아주머니 사이의 금기를 깬 파격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자전적 소설이라 실제에 기초한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더욱 실감나게 읽혀지더라구요. 다시 읽었을 때, 32세가 늙은이 취급받는 것이 안정된 심리상태에 간섭요소로 작용했지만, 페루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그랬겠거니 하고 담대하게 넘어갔습니다.

여기에 ‘자식과 이야기는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의 숨쉬는 것 빼곤 오로지 글쓰기에 몰두하는 작가 페드로 카마초의 드라마 연속극들이 병치삽입되어 경쾌한 속도로 작품을 읽어내리게 합니다. 여기서 페드로 카마초가 바르가스 요사의 또 다른 분신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드라마 연속극들은 처음에는 독자적으로 존재했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바늘로 얼기설기 연관성의 그물을 짜기 시작하는데, 정신없이 읽다보면, 작가의 재치와 벌어지는 상황의 어이없음에 정신없이 웃게 됩니다. 마지막의 열린 결말은 정말 압권이랍니다.

바르가스 요사는 타고난 익살스런 이야기꾼인데다가 텍스트의 해체와 조합이 기막히게 능수능란한 작가입니다. 해체와 조합의 맛을 제대로 느끼시려면 정독하실 것을 권합니다. 저는 웃긴 와중에 이야기를 두서없이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살짝 받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처음에 산만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것 역시 작가의 치밀한 계산 하에 이루어진 독창적인 구성방식이라는 것을 느끼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이 소설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보는 것처럼 현란한 시각적 효과를 통해 독자를 여러 가지 기상천외한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작가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벽을 간단하게 허물며, 비현실을 현실의 세계로 끌어오고, 현실을 비현실의 세계로 치부해 버림으로써, 우리네 삶에서는 불가능했다고 생각했던 그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는 심각한 문제의식이 느껴지는 책은 아닙니다. 도덕적 딜레마의 문제도 이리저리 잘 피해가죠. 제가 책을 읽으면서 좀 더 생각해 보았던 문제는, ‘마리오’의 문학에 대한 ‘열정’에 관한 부분이었는데요. 저는 ‘마리오’를 작가 자신으로 아예 상정하고 보았기 때문에 ‘마리오’의 열정이 곧 작가의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어 참 부러웠습니다. 작품에서는 ‘마리오’가 18살의 애송이로 치부되지만, 작품을 쓸 당시 마흔을 넘긴 작가가 그런 젊은 ‘열정’을 지녔다고 상상하니 참 많이 부럽더군요.

별다를 것 없는 지루한 일상이 싫으신 분들, 일이 고달파 얼굴에 좀처럼 웃음이 밸 일이 없는 분들, 가끔은 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 필요하겠죠? 비판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녹색의 집>(벽호. 1998)이나 <세상종말전쟁>(새물결. 2003)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일단 재미있게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고 싶다면, <궁둥이>(열린세상. 1995)나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문학동네. 2002)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상 속에 첨벙~ 몸을 담그고 마음껏 자맥질하는 재미! 동참해 보시렵니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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