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우리들 영웅 `시민 쾌걸`
거침없는 우리들 영웅 `시민 쾌걸`
  • 북데일리
  • 승인 2007.03.1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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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한국에서 가장 풍자만화를 잘 그리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애석하지만 최고의 풍자만화가라고 부를만한 분은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바로 故 고우영 화백님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살아있는 사람중에서는 누가 최고의 풍자만화가? 단연 김진태 작가가 아닐까싶습니다.

김진태 작가의 작품생산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시민 쾌걸>(학산문화사. 2004)의 경우에는 1997년 스포츠투데이가 창간할 때부터 2004년까지 무려 8년간이나 매일 연재되었습니다.

이것은 이 작품이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를 갖춘 장편이 아니라 독특한 캐릭터들을 먼저 만들고,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캐릭터 코미디이면서 동시에 신문의 만평처럼 당대에 화제가 되는 소재를 패러디할 수 있는 에피소드형 작품이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외에도 김진태 작가는 <왕십리 종합병원> <체리체리고고>와 같은 단행본부터, <바나나 걸> <2급 비밀> <엔터 더 펫>, <호텔 캘리포니아>처럼 단행본으로 발간되지 않은 독특한 에피소드형 개그물을 온라인에 쉬지 않고 연재해왔습니다.

김진태 작가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소시민의 영웅화입니다. <시민 쾌걸>의 정의봉은 IMF 시절 정리해고를 당하고 동네에서 비디오 가게를 시작하는 중년남성입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쾌걸 조로가 되고, 악을 응징하기 위해 동분서주 합니다. 이런 내용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슈퍼히어로물과 비슷한 구도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조로는 멋지고 현란한 기술로 악을 응징하는 영웅이 아닙니다. 쾌걸 조로로 변신하기 위해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체력이 도와주질 않아서 조금만 뛰어도 지쳐서 헉헉 거립니다. 심지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필살기인 `정의의 특단`을 쓰고나서 다음 달에 나올 전기요금 걱정에 전전긍긍하기까지 합니다.

김진태 작가가 이런 소시민적 영웅을 <시민 쾌걸>에서 처음 다룬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황대장>을 통해 이미 이러한 캐릭터를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발로 남자의 중요한 신체부위를 마구 짓밟는 `처절한 응징`과 같은 필살기를 선보였었죠.

<시민 쾌걸>의 경우 IMF가 터진 1997년부터 연재가 들어가면서 당대의 시대상을 잘 반영해냈습니다. 주인공인 정의봉은 정리해고를 당한 중년남성이고, 그의 비디오가게 옆의 상가에는 전두환, 김영삼, 이회창, 김종필과 같은 유력 정치인들의 캐릭터들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민 쾌걸>은 `쾌걸 조로` 정의봉과 그를 둘러싼 궁상맨, 마이다스, 배드맨. 조로걸, 막국수 요원 차지철과 같이 히어로물에 어울릴법한 상대배역들을 설정해놓고 캐릭터로 이야기를 완성해가는 캐릭터 코미디를 지향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당대의 민감한 정치 사회적 이슈들을 죄다 끌고 들어와 썰을 푸는 신문 만평과도 같은 기능까지 담당합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에 대한 에피소드나, 병역비리, 선거등 화제가 되는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다루죠.

<시민 쾌걸>은 그래서 잡탕밥과 같은 매력이 존재합니다. 뒤죽박죽 복잡해보이지만 차분히 보다보면 내일은 어느 캐릭터가 어떤 사건을 일으킬지 기대를 하게 되고, 최근 논란거리인 사건에 대해 과연 정의봉은 어떤 식으로 대처할 것인가가 궁금해집니다. 이는 <거침없이 하이킥>에 중독된 시청자의 심리와 비슷합니다. 다만 지금은 <시민 쾌걸>의 연재가 종료되어 과거의 작품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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