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슬프고도 아름다운 말
불안, 슬프고도 아름다운 말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6.2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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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

[북데일리] <불안의 서>(배수아.봄날의 책.2014)는 포루투칼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1888~1935년) 20년간 쓴 일기를 에세이로 묶은 책이다. 480여편의 텍스트는 페소아 사 후 친구들에 의해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작품 속 화자이며 저자의 이명異名 인 '소아레스' 의 단상들은 짧으면 원고지 2~3매, 길게는 20매 분량의 개별 텍스트가 무려 800쪽이 넘는다. 화자의 비관(悲觀)은 페소아 고향인 리스본에 뿌려지는 흔히 명예, 성공, 편리함, 소음과 번잡함 등이 인정받는 현시대에, 페소아는 정반대되는 어둠, 모호함, 실패, 곤경, 침묵 등을 노래한다. 포르투갈의 도시 리스본, 특히 도라도레스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그곳 사람들과 풍경, 등을 화자의 몽상에 의한 상상력을 맘껏 펼쳐 보인다.

 내 글쓰기의 측은함은 한 문장 한문장 우연한 명상의 책에 기록되는 내 어휘들의 측은함보다 덜하지 않다. 물을 마신 후 유리잔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정체불명의 찌꺼기처럼, 모든 표현의 바닥에서 아닌 채로 잔존한다. 나는 회계장부를 작성할 때와 마찬가지의 기분으로, 신중하지만 담담하게 글을 쓴다. 끝없는 밤하늘의 별들과 무한한 영혼의 비밀, 아무 것도 알 수 없음이라는 깊은 혼돈, 이 모든 것과 비교하면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조그만 업부와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하찮은 사건의 일부일 뿐이다."( 44쪽)
 
 소아레스는 조그만 사무실의 회계원으로 일한다. 회계장부에 숫자나 기입하는 하찮은 일상을 시시한 몽상에서 자신의 감정을 활자로 그러 모은다. 글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그에게 삶은 '모든 것을 옭아매지만 아무것도 나를 붙들어 주지 못하는 것'이라는 비관(悲觀)은 페소아식 불안이며 삶의 근저에 깔리는 것은 고독과 슬픔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존재가 된다는 의미다. 어제 느낀 것처럼 오늘도 똑같이 느낀다면, 그것은 느낌이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어제도 오늘처럼 오늘도 같은 느낌이라면, 그것은 느낀 것이 아니라 어제 느꼈던 것을 오늘 기억해낸 것이며, 어제 살아 있었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은 것의 살아있는 시체가 되었음을 의미 한다. 하루의 모든 내용을 칠판에서 지워 내는 일,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아침을 사는 일, 우리감정의 처녀성을 반복해서 부활시키는 일, 그것이니 오직 그것만이 존재와 소유의 가치가 있다."(185쪽)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 올것 같다. 소아레스는 자신의 주성분이 '시시한 몽상'이라고 말하는데 그의 원형질 자체가 우울한 영혼같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갖고 싶은 것도 없는 심지어 벗어나고 싶은 것초자 자신에게는 없다고 말한다. 그의 책 갈피마다 그의 사유는 불안의 다른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나는 달아나고 싶다.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내 것으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 나는 홀연히 떠나고 싶다. 불가능한 인도나 모든 것이 기다리는 남쪽의 섬나라가 아니라, 어딘가 알려지지 않은 곳, 작은 마을이나 외딴 장소, 지금 여기와는 아주 다른 곳으로. 나는 이곳의 얼굴들을, 이곳의 일상과 나날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낯선 이방인이 되어 내 피와 살 속에 뒤섞인 위선 벗어나 쉬고 싶다. 휴식이 아니라 생명으로서 잠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싶다. 바닷가의 작은 오두막, 아니 험난한 산비탈 벼랑의 동굴이라 할지라도 내 이런 소망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의지는 그렇지 못하다.( 300쪽)
 
 소아레스는 삶을 노예다. 반복되는 일상을 무조건 따라야 하고 피할 길도 없으며 반항할 수도 없다는 극도의 표현에서 스스로 하여금 숨막힘을 호소하며 그 단조로움이 질식의 원인이다. 이렇듯 작가의 내면엔 무언가에 대해 저항하는 모습이 다르게 비춰진다. 그것은 누구도 무엇에도 아닌 고독하게 태어난 인간의 운명이다.

 나는 내 안에서 여러 개성을 창조해냈다. 나는 계속해서 다양한 개성들을 창조하고 있다. 내가 꿈을 꿀 때마다 모든 꿈이 하나하나 육신을 입고 서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난 꿈들은 나를 대신하여 계속해서 꿈을 꾼다.( 508쪽)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소설 제목처럼 다른 나를 창조하기 위하여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는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을 번역한 배수아는 페소아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소아레스를 창조해 스스로 각자의 삶과 성격을 세계관의 바탕위에서 스스로의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페소아가 의도적으로 소아레스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강박에 사로 잡힌 채 자신의 소아레스로 분열해 버린것 같다고 말했다.  책은 지금까지 문학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불안과 슬픔에 관에 다룬다. 책의 부피만큼이나 주제가 무거워 선뜻 권하기엔 망설여지는 책이다. 하지만 불안을 피해가기엔 현실이 놀록치않다. 문학적 카타르시스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페소아식 고독에 빠져 보라고 권한다. <장맹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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