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히말라야 여행기
정유정의 히말라야 여행기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5.2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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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여정을 함께 마친 듯 가슴 뿌듯

[북데일리] 네팔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잘나가던 작가가 ‘사서 고생’인 여행길에 올랐다. 전문산악인들도 힘들어 하는 코스로. 그 여행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행나무. 2014)은 <내 심장을 향해 쏴라>, <7년의 밤>과 <28>로 유명한 정유정의 첫 여행 에세이집이다.

책에 따르면, 그녀는 지난해 <28>을 탈고한 뒤 알 수 없는 무력감에 빠졌다. 그 처방으로 여행을 선택했다. 그녀가 생애 처음 떠나기로 한 해외여행지는 바로 자신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승민’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워하던 히말라야다. 그녀는 그곳으로의 ‘환상종주Circuit’를 계획한다.

그곳은 히말라야 산맥 중부에 위치한 안나푸르나 영봉을 끼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한 바퀴 도는 트레킹 코스다. 이곳은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도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강한 체력과 정신력이 없이는 쉽게 도전할 수 없고 지대가 높아 고산병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그녀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을 감행한다. 그 길에 후배 작가 김혜나가 동행한다.

여행 초반부터 그녀는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못해 굶주리게 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고 부터는 심각한 변비로 고생한다. 결국에는 그렇게 걱정했던 고산병 증세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를 끼고 도는 ‘환상종주’는 어느새 길을 잃고 헤매는 ‘환상방황’이 되어버린다.

그녀는 이국의 쓸쓸한 ‘마르상디’ 강가에서 어머니의 기일을 맞는다. 그녀의 어머니는 간경화와 간암으로 3년 반 동안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녀는 끝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이모는 ‘독한 년’이라고 했다.

“내 등에는 세 동생이 업혀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아버지마저 내게 기댔다. 나는 싸움꾼이 돼야 했다. 어머니가 가르친 대로, 죽는시늉하지 않고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어머니의 유언대로, 어머니를 대신해 엄마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으므로.” (p.132)

이제 그녀는 그곳에서 어머니와 건강한 작별을 하게 되고, 어린 동생 셋을 건사해야 하는 맏딸로 살아온 가슴속 응어리를 푼다.

힘든 종주길, 고산병 증세에 시달리는 그녀들. 종주 8일째 되는 날 기진맥진한 혜나가 자리에 누우려 하자 현지 가이드 ‘검부’는 계속 가야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야크 언덕으로 끌려갔다. 보조다리인 스틱도 없이, 밤에 들으면 오해하기 딱 좋은 신음과 숨을 흘리면서. 그사이, 양쪽 관자놀이에서 야크 뿔이 돋았다. 귀에서는 뜨거운 김이 나오고 입에서는 욕이 나왔다. 아이고, 이 썩을 놈아. 우리는 라이족이 아니여. 김씨하고 정씨라고.” (p.150)

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 마침내 언덕배기에 올라서자 인간이 살기 이전의 지상과 같은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설연이 흩날리는 은빛 연봉들, 산허리를 휘감고 흐르는 구름, 골짜기를 이루며 뻗어 나온 다갈색 암벽들, 거칠게 갈라진 황무지언덕, 그 위로 드리워진 고요, 기묘한 쾌감과 흥분이 진동처럼 발바닥을 두들겼다.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에 도달한 마라토너처럼.” (p.150)

종주 10일째, 드디어 목적지인 쏘롱라패스에 도달한다. 끝없는 육체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행군을 계속해 그곳에 무사히 도착한 것. 그녀는 준비해 간 타임캡슐을 돌탑 밑으로 밀어 넣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나 자신과 싸울 수 있을까.
어떤 목소리가 답해왔다.
죽는 날까지." (p.186)

이와 함께 힘든 여정을 끝낸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아이인 동시에 어른인 셈이다. 삶을 배우면서 죽음을 체득해 가는 존재. 나는 안나푸르나에서 비로소, 혹은 운 좋게 어른의 문턱을 넘었다." (p.307)

처음 책을 접한 순간 ‘아무리 잘나가는 작가라지만 고작 17일 여행하고 쓴 책이 얼마나 괜찮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읽어보길 권한다. 작가의 입담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비죽비죽 나오고 책을 덮고 나면 뭉클해진다. 마치 그녀의 여행에 동행해 힘든 여정을 함께 마친 듯 가슴 뿌듯해진다. 그녀의 여행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녀의 다음 책이 기대된다.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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