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마음으로 그린 시의 무늬
아이 마음으로 그린 시의 무늬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5.13 2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희성 시인의 <그리운 나무>

"어떻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겠는가. 그저 손을 들어 소리의 높이를 가늠할 따름이다."- 시인의 말

[북데일리] "언어는 인간에게 미리 주어져 있다. 인간이 말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언어는 인간 속에 있었다." <인간과 말>에 나오는 막스 피카르트의 말이다. 철학자에 의하면 시인은 자신의 선험적인 언어를 이용해서 시를 말한다. 시집<그리운 나무>(창비. 2013)는 순전히 선험적 말의 힘을 침묵으로 일관한다.

"음지식물이 처음부터 음지식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큰 나무에 가려 햇빛을 보기 어려워지자/ 몸을 낮추어 스스로 광량光量을 조절하고/ 그늘을 견디는 연습을 오래 해 왔을 것이다/ 나는 인간의 거처에도 그런 형상이 있음을 안다/ 인간도 별 수 없는 자연에 속하는 존재이므로" (음지식물) 전문

시인의 말은 언제나 진실에서 시작한다. 그것이 경험이든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든 현실을 시로 말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시가 먼저 있었다는 걸 알았으니까 말이다. 음지식물의 삶을 통해 인간세상을 들여다보는 관점은 시인이 살아온 삶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암 수술 받고 병원 문을 나서다보니/ 골목 한켠으로 영안실이 눈에 들어오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내일을 위해 / 인쇄소는 새해 달력을 찍느라 분주하다/ 생각하느니, 죽음과 삶의 경계는 무엇인가/ 후미진 세월 모퉁이에서 몰래 만나/ 입 맞추듯 서로 피를 빠는 이 황홀경!"('근황,2009년 12월 15일의 기록') 전문

아파보니 세상이 더 잘 보이더라는 댓구처럼 시인은 사람들의 행위에서 어떤 떨림 같은 리듬을 감지한다. 흐릿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불안보다 황홀경은 이 시에서도 돋보인다.

전깃줄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 어린 아이가 그걸 보고서/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만/"내려와아, 위험해애".('교감') 전문

노 시인의 모습에서 순진무구함이 드러난다. 시인의 네 번째 시집<시를 찾아서>에서 민지라는 아이('말')를 보는 듯하다. 잡초에게 물을 주며 꽃이라고 대답하는 심성이 시인의 본성일까. 이런 마음이기에 세상을 아름답게 읽는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그리운 나무') 전문

'말을 아끼고 그저 손으로 소리의 높이를 가늠할 뿐' 이라는 시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시편마다 맑고 투명한 시의 결이 보인다. 인간이 그리는 삶의 무늬 중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그려내는 시의 무늬는 얼마나 명징하고 아름다울 것인가. 다음 시가 기다려진다.<장맹순 시민기자>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