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날에 박힌 분홍 못
푸른 날에 박힌 분홍 못
  • 장맹순 시민기자
  • 승인 2014.05.0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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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첫 시집< 어느 곳에나 있고...>

 

[북데일리] 시는 사람의 삶이며 얼굴이다. 독자는 그것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기도 한다. 이 연주 시<어느 곳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는> (문학의 전당. 2014) 가 그렇다. 시인은 일상의 편린들을 모아 맑고 정갈한 언어로 시의 집을 지었다. 유년시절 선생님이 꿈이었던 바람이 이렇게 반듯한 시를 쓰게 한 걸까. 조심스레 시의 집에 손기척을 해 본다.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뾰족한 날을 세우고/ 살 속에 깊이깊이 파고들/ 순간을 노리고 있다/ 날카롭게 소름돋는 정적이/ 개처럼/ 우리 사이를 흐르고 있다/ 푸른 날들에 박힌/ 분홍의 못 아직 그대로인데/ 더는 드리고 싶지 않은데/ 자꾸 가까워지는 시퍼런 천공(穿孔)/ 어둠속에서 다가 오고 있다."('못') 전문

문안에 걸린 첫 시가 뾰족한 못처럼 긴장하게 만든다. 못은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매개체이면서 날카로운 비수처럼 상처가 되어 가슴에 박히는 말을 뜻하기도 한다. 생활시에서 보기 힘든 날카롭고 섬세한 중의법 표현이 다음 시에 다가가게 한다.

"가득한 허공에서 떨어지는 것들이/ 화살처럼 직선으로 몸을 날려/ 창가에 와서 맨머리 부딪친다/ 파열된 두개골에서 쏟아져 나오는 투명한 뇌수가 유리창/ 아득한 천길 절벽으로 흘러 내린다/ 비는/오래오래 내리달아야 방울이 된다/ 부서지기 직전의 짧은 순간이/ 내려지는 번개 같이 잠깐 동안만/ 슬픈 방울이 된다(중략) 깨어지기 전까지만 온전한/ 사랑같이/ 새빨간 방울토마토가/ 먹히기 위한 접시 위에서/ 오래 내리 닫고 있다."('빗방울')부분

떨어지는 비가 창에 부딪칠 때에는 여러 갈개의 사선으로 내리긋기도 하지만 시인은 창가에 쏟아지는 비를 통해 파열된 두개골의 뇌수라고 말한다. 애초에 둥글었던 것들은 깨지기 직전의 온전한 사랑을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어머니의 사랑에 마음을 얹어 놓은 시인을 보자.

​ "어머님은/ 서울 가는 기차표줄을 서서 샀다/ 기차를 타려 했지만(중략) 기차는 떠나 버렸다/ 차표만 쥐고 돌아온 어머니/ 기차를 타지 못한 꿈이야기​/ 차표 닳겠네/ 십여 년 넘도록 그 말씀만 하셨다/ 어미야 어제 저녁에는 기차를 탔니아/ 어머니 서울 갈 일 있겠네요/ 서울 아니고 곧 너희 시아버지 계신 곳에 갈 것 같다(중략)/ 아침 산책 가신다면서/(중략)아버지한테 가시었다/ 십여 년 갖고 다니던 구겨진 꿈속의 차표만 가지고"(기차표)부분

​ 사랑으로 이은 줄은 잠시 끊어졌다가도 다시 이어지나보다. 부부연으로 살다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가면 훗날 남겨진 사랑도 달랑 차표 한 장 쥐고 뒤 따르는 게 애잔한 사랑이 아닐까. 이 외에도 시집엔 연꽃, 석류, 회복실, 같은 자연과 삶에서 건져올린 시편들이 반듯하게 살아온 시인의 삶을 거울처럼 비춘다. 시를 어려워 하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애초에 시의 마음은 이런 거라고.

​이연주 시인은 2008년 계간<문장>(시부문)으로 등단했다. 2007년<문학미디어>수필부문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직반 바퀴를 돌아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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