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다시 꽃 피우지 마십시오
저를 다시 꽃 피우지 마십시오
  • 장맹순
  • 승인 2014.04.1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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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북데일리] 삶의 수면위로 뻐끔거리는 일/병실에는 그녀가 광합성으로 토해놓은 산소들이/투명한 공기방울이 되어 떠다녔다/(...)/공기방울에선 수레국화 냄새가 났다/천천히 시들어가던 그녀가/ 침대시트의 문양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빛을 향해 열렸던 눈과 귀가 닫힌 문처럼 고요해졌을/(...)죽음이 투명해질 때까지/죽음을 길들이느라 남은 힘을 다 써버린 사람(...) 멀리서 수레국화 한 송이 피어나기 시작했다.('식물적인 죽음')부분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노래해 온 나희덕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문학과 지성사.2014)​ 은 삶 안에 드리워진 죽음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동생의 죽음('그날 아침')과 가까운 문우의 죽음을 보았다. 삶속 죽음을 통해 슬픔과 두려움, 가슴 아픔이 시인에게 찾아온다. 5년 만에 나온 이번 시집에는 그런 흔적들로 가득하다.

​"제 마른 가지 끝은/ 가늘어질 대로 가늘어 졌습니다/ 더는 쪼개질 수 없도록./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곧 무거워질 잎사귀일랑 주지 마십시오/ 나부끼는 황홀대신/ 스스로의 棺이 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부디 저를 다시 꽃 피우지 마십시오." ('어떤 나무의 말'전문.9쪽)

​시집 첫 머리에 실린 시다. ​나무로 설정된 시인은 생명을 불어넣는 입김과 옷을 거부한다. 잎사귀도 꽃도 피우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내부 속에 머물고 싶어 한다. 어둠속에서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침잠을 뜻한다. 시인은 종국에 화석처럼 관이 되어 죽은 자의 영혼을 보듬는 존재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죽어가는 시간을 살게 된다.

​"내 눈빛을 꺼 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는 시('묘비명') 의 구절이다. 한 사람의 전 생애를 더듬어 보고 사후에도 남아 있을 흔적('묘비명') 은 한 떨기 죽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고통은 어둠에 갇히는 일이라 말한다.

"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점을 친 다지/ 접시에 반지, 기도서, 물, 진흙, 동전을 담아/ 눈을 가린 술래에게 하나를 집게 하는데/반지를 집으면 곧 결혼하게 되고/ 기도서를 집으면 수도원으로 가게 되고/ 물을 집으면 오래 살게 되고/ 진흙을 집으면 곧 죽게 되고/ 동전을 집으면 엄청난 부자가 된 다지/ 내가 집은 것은 진흙,/ 차갑고 축축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손끝에 느껴질 때/ 그것은 죽음이 만져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조금 놀라기도 하지/ 그러나 우리는 오래전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 아침마다 세수를 하며 그 감촉을 느끼곤 하지/ 물로 씻어내는 동안 조금씩 닳아가는 진흙 마스크를/ 잘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루를 시작하지/ 아일랜드에 가지 않아도/ 반지, 기도서, 물, 진흙, 동전을 담은 접시는/ 식탁이나 선반위에 늘 놓여있지/ 내가 집어든 것은 진흙,/그것으로 빚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고/ 진흙이 마르는 동안 갈라지는 슬픔 또한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이 어두운 진흙의 사람,/ 그러니 내 손이 진흙을 집어 들더라도/ 부디 놀라지 말기를!/ 가렸던 눈을 다시 뜬다 해도/ 나는 역시 한 줌의 진흙을 집어 들것이다."(진흙의 여자.88쪽~p.89쪽) 전문

시집엔 다양한 표정으로 죽음을 애도하는 시들이 많다. 시인은 생명력 넘치는 시편대신 손끝에 느껴지는 피부의 감촉에서 죽음을 떠올린다. 고대 로마 전쟁영웅들이 전쟁에서 희생된 전사들을 위해 외쳤던 메멘토 모리(momento mori)처럼 매 순간마다 '죽어가는 것을 기억하라'뜻은 아닐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과 같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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