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엽기문화의 원조` 문학작품 따로있다.
`한국 엽기문화의 원조` 문학작품 따로있다.
  • 북데일리
  • 승인 2005.06.10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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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TV뉴스를 비롯 신문, 온라인 뉴스는 부녀자 20명을 연쇄살인한 유영철(34)에 대해 사형이 최종 확정됐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유씨는 1심에서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뒤 항소하지 않았지만 검찰이 이외에 1건에 대해 추가 살인부분을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결정했다.

지난해 12월 발생 직후 국내는 물론 해외토픽으로도 다뤄져 전세계가 떠들썩했던 이 사건은 마스크를 쓰고 현장검증을 하는 유영철의 모습, 피해자 가족을 경찰이 발로 제지하다가 넘어뜨리는 장면, 마스크를 벗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유영철 등을 담은 화면이 TV로 방송돼 시청자들을 치를 떨게 만들었다.

유영철의 `엽기적인 연쇄살인`에 대해 다양한 사회적 의미 부여와 분석결과가 나왔고 범죄예방을 위한 여러가지 대안이 제시됐지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엽기적인 사건과 사고`는 지금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런 사회적인 개별 현상의 특성을 지칭하던 `엽기`라는 단어는 2000년초부터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잡기 시작해, 문화예술 작품과 인터넷 상의 다양한 패러디를 통해 일련의 현상을 만들어왔다. 특히 `엽기적인` 텍스트와 `엽기스런` 이미지는 신속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소통수단인 온라인 매체(PC통신, 인터넷 등)를 통해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갔다. 고문, 범죄, 성폭력 등을 소재로 한 인터넷 `엽기 사이트`가 확산된 시점도 이 무렵이다.

99년 8월 PC통신에 연재돼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대중소설 `엽기적인 그녀`는 2000년 1월 소설책으로 발간되면서 문화현상의 주변부에서 중심부의 관심을 모으기에 이른다. 이듬해 영화로 제작돼 `대박`을 터뜨렸지만 `엽기`를 문화의 중심부로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엽기적인 그녀`가 단순한 유행을 반영했다면 2000년 2월 출간된 백민석의 장편소설 `목화밭 엽기전`(문학동네)은 문학비평가들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엽기현상`과 `엽기문화`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엽기`에 관한 문화적 코드의 구조를 완결짓고 사회현상으로서 `엽기`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 작품이다.

책 `목화밭 엽기전` 286페이지에 나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한창림과 박태자 부부는 대학강사와 수학 과외선생이라는 지극히 정상적인 직업을 가지고 과천의 서울대공원 옆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주 특별한 부업을 갖고 있다. 어린 남자아이를 납치하여 포르노 비디오를 찍고, 결국엔 그를 죽여 집 뒤의 공터에 거름으로 파묻어버리는 일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끔찍한 부업의 대가로 한창림은 `펫숍 삼촌`(권력 혹은 빅 브라더의 상징으로 읽힌다)으로부터 돈을 받는다. 펫숍 삼촌은 밀실에서 한창림이 건네준 포르노 비디오를 즐긴다. 그들은 텔레비전과 침대와 식탁이 있는 평범한 주택의 지하에 포르노그라피를 찍기 위한 밀실을 감춰두고 있으며, 범상한 생활의 이면에서 패악을 저지르고 광란에 빠져 있다.

그들이 청담동 사내애를 유괴해놓고 학대하는 `지하 작업실`이나 `뷰티풀 피플` 언니의 남편이 자기 아내를 발가벗기고 거꾸로 매달아 세간과 함께 `세일`하고 있는 그 부부네의 뒤뜰, 박태자가 윤간을 당하고 살해된 다음 소각기에 던져지게 되는 펫숍, 한창림이 스스로 불러들인 경찰과 일대 혈전을 벌이는 `서울랜드` 등, 소설의 주요 사건이 벌어지는 곳곳에서는 인간 존재를 한낱 물리적 사실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폭력이 난무한다.]

백민석은 언론 인터뷰에서 "영화는 현실의 모방이다. 그것을 뒤따른다면 `모방의 모방` 밖에 안된다. 작품을 쓰기 위해 국내외의 엽기전 사례를 취재했다. 실제 사건들이 영화보다 훨씬 끔찍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작품을 두고 문단에서는 `엽기의 의미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고 문에`비평과 전망`(제3호, 2001상반기), 책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2002, 한국마케팅연구소) 등은 이를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요약하자면 엽기적인 소재를 엽기적인 묘사로 다룬 백민석의 소설에 대해 `사회의 주변부에서 박탈과 소외의 체험을 안고 사는 젊들이들의 원한과 울분을 실어나른다`는 입장과 `사건과 소재를 즐기는 자체를 중시하고 문화현상과 현실사이의 정치적 관계에는 무관심하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문단에서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에 대해 문제제기된 시점도 일치한다.

한겨레 문화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는 "`주례사 비평`이라는 환부를 치료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대화와 토론"이라며 "`주례사비평`의 반대쪽에 선 사람들이 스스로 또 다른 비판의 대상 자리에 위치시켜 자신들의 외침이 메아리 없는 독백으로 남는 사태"를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급속하게 변해가는 소통수단이 `엽기`에 대한 감각을 무뎌지게 만드는 현실에서 `엽기를 즐기는 문화현상`과 `엽기로 분출하는 울분`에 대해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설명 - 소설 `목화밭 엽기전` 작가 백민석과 영화 `엽기적인 그녀` 포스터. 책표지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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