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송파구 '감성의 북콘서트'
책읽는 송파구 '감성의 북콘서트'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3.09.0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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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수놓은 김용택 시인과 북밴 공연

[북데일리]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 (중략) 그 여자의 까만 머리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 김용택 시인의 시 ‘그 여자네 집’중에서

9월, 이 아름다운 독서의 계절에 책과 노래처럼 매력적인 조합이 있을까. 책읽는 송파구가 색다른 북콘서트를 통해 따뜻한 감성을 구민들에게 선물했다. 송파구는 지난 4일 구청 대강당에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을 초청해 북콘서트를 열었다.

북콘서트는 말 그대로 책과 음악이 함께하는 무대다. 하지만 기존 북콘서트는 책을 주제로 하되, 음악은 책과 관련 없는 경우가 많았다. 즉 무늬만 북콘서트였던 셈이다. 이런 시장에 새 바람을 몰고 온 ‘가객’이 바로 문학을 노래하는 ‘북밴’이다. 북밴은 초청 작가의 책을 노래로 만들어 공연한다. 그로 인해 책 노래-작가와 대화-책 노래-작가 강연-독자와 대화-책노래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명실상부한 북콘서트가 됐다.

이날 북콘서트 역시 책 노래로 시작됐다. 김영랑 시인의 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를 처음 선율로 만든 북밴의 노래였다. 이어 ‘책 읽는 송파’를 슬로건을 앞세우며 책 전도사로 나선 박춘희 송파구청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시가 곧 삶이고 삶이 시인 김용택 시인을 만난 것이 매우 기쁩니다. 검색만 있고 사색이 없는 시대에, 이 행사는 책을 통해 자연과 사람, 문학이 어우러질 수 있는 감성의 시간입니다.”

김용택 시인은 1982년 ‘섬진강’으로 등단한 이후 30년 동안 꾸준히 서정시를 발표했다. 올 4월엔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창비. 2013)이란 시집을 출간했다. 시인은 이 시집의 의미에 대해 말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달콤하고 감미로운 행위인 키스를 통해 ‘정말 우리는 잘 살고 있는가, 우리는 바르게 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담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이 섬진강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 농사짓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 그런 환경이 자신을 자극해서 시로 솟아나왔다고 말했다. 그가 늘 말해왔던 “자연이 말하는 것을 받아써서 시를 썼다”는 것. 물론 환경도 중요하지만 시골이건 도시건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볼 때 시가 나온다고 전했다.

이어 김 시인은 자전적인 삶을 노래한 ‘나의 시’를 낭송했고, 북밴이 그 시를 노래로 불렀다. 다음으로 시인의 팬이라는 박미정씨가 ‘그 강에 가고 싶다‘를, 이은희씨가 ’사랑‘이란 시를 들려줬다. 낭송자들의 아름답고 개성있는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시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시인은 ‘시, 사람, 자연이 함께 하는 삶의 가치’란 주제로 30분 강연을 통해 자신의 창작활동과 시 ‘그 여자네 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박완서 작가가 그 시를 보고 <그 여자네 잡>이라는 동명의 소설을 썼다는 후일담도 들려줬다.

“섬진강가 징검다리에서 일어나는 일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쓸 거리가 많다. (중략) 11월 어느 날, 저 들판 끝에서 ‘그 여자’가 배추를 뽑아 머리에 이고 오더니 내 앞에서 획 지나갔다. 나를 보고 약간 웃었던 것 같다. 쪽니가 이뻤다. 월남치마를 입고 있었다. 빨간 쉐타를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땄다. 너무 예뻤다. 내가 반했고 둘이 좋아했다. 그런데 여자들은 참 나쁘다. 어느 날 말도 안하고 가버렸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시 ‘그 여자네 집’을 썼다.”

더불어 덕치초등학교에서 30년간 근무했던 시인은 “아이들이, 농사짓는 사람들이, 어머니가 자신의 스승이었다”며 “해가 하는 일, 가을 바람이 하는 일, 가을 햇살이 하는 일을 잘 아는 그들의 삶을 따라다니며 시를 썼다.“고 말했다.

끝으로 북밴은 시인의 고향 ‘살구꽃 피는 마을’로 관객들을 데려갔다. 시인의 시가 아름답고 흥겨운 선율로 행사장 가득 퍼졌다.

이어진 질의응답시간. 한 관객이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물었다. 이날 가장 인상적인 시인의 대답이었다.

“저는 스물두 살에 일찍 선생이 됐다. 해서 특별히 바라는 거, 되고 싶은 거, 희망이 없었다. 희망이 없으면 정말 인생이 편하다. 바라는 바가 없다 보니까 모든 것들이 다 이뤄졌다. 책 읽는 게 너무 좋았지만 시인이 되려고 바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시인이 됐다. 얼마나 좋겠는가? 바라지도 않았는데 책이 잘 팔렸다. 이것도 얼마나 좋은가? ‘지금이 늘 좋은 삶이다’ 이런 생각으로 산다. 지나간 세월, 앞으로 올 삶이 아니라 지금이 가장 좋다.”

행사가 끝난 후 시인의 책 사인회와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한 여성 관객은 “푸근한 인상의 큰 오빠 같은 시인을 늘 만나 뵙고 싶었는데 너무 반가웠다”며 “그동안의 행사들은 주로 책 읽고 질의응답하는 시간으로 진행됐는데, 북밴과 함께 북콘서트까지 하니까 문화생활도 겸할 수 있어서 참신하고 아주 좋았다”고 반색했다.

책과 음악, 작가의 강연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북콘서트는 각박한 세태 속에서도 문향을 잃지 않는 이들 가슴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북밴이 들려준 이병률 작가의 시 ‘끌림‘을 마지막으로 행복한 시간이 마무리됐다. 이날 사회는 SBS 기상캐스터 이나영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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