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과 힘줄을 가지고 있는 바람...
근육과 힘줄을 가지고 있는 바람...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7.08 17: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속 명문장] 김언수의 소설집 <잽> 중에서

[북데일리] 글을 잘 쓰려면 뛰어난 관찰력이 필요하다. 모든 사물에 민감해야 한다. 날씨도 마찬가지다. 평범하게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분다가 아니라 섬세하게 관찰하고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김언수의 <잽>(2013. 문학동네)엔 회오리바람을 묘사한 글처럼 말이다. 

 ‘운동장에서는 아름다운 회오리바람이 9월의 은행나무 잎사귀들을 둘둘 말아 하늘 높이 올려보내고 있었다. 은행 잎사귀들은 회오리바람의 형상을 따라 나선형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국기게양대보다 더 높이 치솟아올랐다. 팽이의 가파른 회전처럼, 토성의 띠를 이루는 얼음 알갱이들처럼 은행 잎사귀를 머금고 빙빙 도는 바람의 모습은 놀랍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때까지 바람의 형상을 본 적이 없었다. 내게 바람은 산소나 질소처럼, 혹은 사랑이나 분노처럼 아무런 욕체도 가지지 않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날 내 눈앞에 보인 것은 근육과 힘줄을 가지고 있는 바람 그 자체였다. 그리고 아주 아름다웠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12쪽)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