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조카혼사 막으려 목숨 걸고 귀국한 사연
신채호, 조카혼사 막으려 목숨 걸고 귀국한 사연
  • 북데일리
  • 승인 2005.08.3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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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편찬위원회가 29일 친일 인사 명단을 발표했다.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진행된 이번 친일인사명단 발표는 뒤늦은 감이 있다. 한편으론 친일파 역사 청산 함께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일제 36년 간 독립운동을 위해 애썼던 독립 투사들의 복권이다. 평생을 조국 독립에 바쳤지만 국적조차 회복하지 못한 독립투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단재 신채호다. 그는 아직 대한민국의 국적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는 30여년 동안 중국을 떠돌며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단재가 해외 망명 중 딱 한번 국내에 들어온 일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조카딸 향란의 혼사 문제 때문이었다. 그때 단재는 조카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막으러 간 것이었다.

독립기념관장인 김상웅 선생이 지은 ‘단재 신채호 평전’(2005, 시대의 창)에 따르면 향란은 단재의 형 재호의 딸이었다. 여덟살 연상인 형은 아버지 없이 자란 단재에게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런 형을 단재는 열두 살 때 잃었다. 단재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그 후 단재는 유일한 형의 혈육인 향란을 누구보다 아꼈다. 단재가 망명길에 나서면서도 지인에게 극진하게 보살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런 조카딸인 만큼 혼사는 단재에게 기뻐해야할 일이었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조카딸 향란이 친일파와 결혼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단재는 그 혼사를 막기 위해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목숨을 걸고 고국에 잠입했던 것이다.

하지만 단재의 뜻과 달리 향란은 숙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단재는 조카와 의절하는 뜻으로 단지(斷指)하고 헤어졌다. 비록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단재의 치열한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에게 친일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런 단재의 뜻은 책에서 수시로 확인 할 수 있다.

단재는 청년시절 자신을 성균관에 추천해 준 지인의 친일 행위에 의절하고 ‘충노’라며 질타했다. 또한 대종교 지도자 한 사람이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위원을 지낸 것에 대해 철저한 비판을 가했다. 뤼순 감옥에서 친일파 종친의 보호자 선정을 거부해 끝내 옥사를 당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례들은 친일파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단재의 엄정함을 보여준 것이다.

‘신채호 평전’에는 단재가 참여한 독립 운동 무력 행동 단체인 ‘다물단’의 ‘소탕선언문’이 소개돼 있다. ‘왜의 총독과 천황을 먼저 죽여야 하지만 조선인으로서 왜노의 혼을 가진 자를 먼저 소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왜노를 우리의 독립전쟁의 목표로 삼는다면 불량 분자인 왜노의 개(犬)는 독립전쟁의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이 장애물을 소탕하지 않으면 우리들의 전도는 폐쇄되고 독립전쟁은 진행하기 곤란하므로 우리들은 악한 분자를 먼저 소제할 것을 맹세한다.’ -본문 310쪽

지금의 친일 인사들의 명단 발표가 ‘소탕선언문’의 연장이 아닐까. 그렇다면 60년이 지난 지금 겨우 소탕분자들의 이름만 올렸을 뿐이다. 현재 단재의 국적 회복과 발자취는 가난과 위암으로 투병 중인 맏 며느리인 이덕남 여사가 더듬고 있다.

(사진=1. 단재 신채호, 2. 단재 신채호 평전 3. 대전 중구 어남동에 위치한 단재 생가, 출처 http://blog.naver.com/taojgc 4. 단재가 집필한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 [북데일리 진정근 기자]gagora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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