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은 교수 작가들의 연애편지 공개
김다은 교수 작가들의 연애편지 공개
  • 북데일리
  • 승인 2006.08.3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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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연애편지 공개 "아내-남편들에 감사"

[인터뷰] <작가들의 연애편지> 엮은이 김다은 교수

“식과 영은 사랑했다. 그러나 식에게는 회춘할 수 없는 병처가 있었다. 그런대로 그네들의 사랑은 해가 갈수록 깊어졌다. 영은 가끔 ‘나 다른 데로 시집갈까봐’ 했다. 그때마다 식은 몹시 노여운 듯 한 무서운 눈으로 영을 노려보곤 했다. 뿐만 아니라 죽일 듯이 와락 달려들다 참는 시늉을 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네들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굳어졌다”

소설가 김동리(1913~1995)가 직접 쓴 연애편지 도입부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가 27인의 연애편지가 <작가들의 연애편지>(생각의나무. 2006)에 실려 있다. 독창적인 자기세계와 탁월한 문장력을 가진 작가들의 실제 연애편지에 점수를 매기기란 불가능 한 일이지만 김동리의 글은 그 중에서도 “탁월하다”고 할 만큼 특별하다. ‘長篇小說’(장편소설)이라는 표기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글이기도 하다.

김동리의 글을 포함한 수십통의 귀한 편지들이 공개되기까지는 엮은이 김다은의 수고가 있었다. 소설가이자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인 김다은은 서간체 문학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장편소설 <이상한 연애편지>(생각의나무. 2006), <작가들의 연애편지> 모두 서간체 문학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에서 출발한 작업물이다.

김다은의 눈빛은 <이상한 연애편지> 때와 조금 달랐다. 당시 보이지 않던 ‘결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작가의 사적 편지를 문학 텍스트로 당연시 하는 일본이나 유럽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작가의 편지 문학은커녕 연애편지나 사적 서신의 공개조차 어려운 실정입니다. 공개된다고 해도 작가의 사생활을 엿보거나 작품을 이해하는 자료로 이용되고 있을 뿐이죠. 이는 편지의 기능이 안부나 감정 전달이라는 실용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편지 그 자체가 문학적 실험의 장이거나 텍스트라는 인식이 없다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서간체 문학에 대한 그의 열의는 더 깊어진 것 같았다. 작가 27인의 편지를 모으기까지 험난한 과정도 들려줬다.

“2003년 월간 ‘NEXT’를 창간하면서 가장 먼저 기획한 것이 작가의 연애편지였습니다. 연애편지와 문학텍스트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처음 3개월 간은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승낙했다가도 막상 내놓으려니 안 되겠다면서 마감일 하루 전에 취소하는 작가도 있었죠.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1년 동안 받은 것이 모두 6통이었어요. 이 후에는 편지를 모으기가 조금 수월해 졌고 먼저 내놓겠다는 작가도 생겨났죠. 김동리와 김훈의 편지는 유족과 작가가 자발적으로 건네준 연애편지였습니다”

김동리의 글은 소설가 서영은 덕에 공개 되었다.

경주에 만들어진 ‘동리,목월 문학관’에 김동리의 주민등록증, 펜, 메모지 등을 내놓았던 서영은은 여러 작가들의 연애편지를 모아 책으로 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문학관에도 차마 내놓지 못하고 간직해 왔던 김동리의 연애편지를 내놓겠다고 했다.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김동리의 연애편지를 받아들던 때의 벅찬 감정을 어찌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김다은은 당시를 회상하며 감회에 젖는 듯 했다. 이어 김동리의 ‘長篇小說 연애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다운 견해를 밝혔다.

“이글은 김동리가 1997년 소인이 찍힌 봉투에 담아 소설가 서영은에게 보낸 것입니다. 작가는 ‘長篇小說’이라고 제목을 달아 놓고 掌篇소설과 단평을 썼죠. 이것은 장르 구분을 혼동한 것이 아니라 작가론에 근거한 새로운 편지 양식을 시도한 작품입니다. 통상 구분되는 장르론을 뛰어 넘어서 말이죠. 이는 키츠(Keats, John, 1795~1821)의 시가 편지문학으로도 분류되고 소네트(sonnet : 14행의 짧은 시로 이루어진 서양 시가)로도 분류되는 이유와 유사합니다. 서영은이 이 글을 소설이 아닌 연애편지로 보고 건네 준 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김다은은 김동리의 ‘長篇小說 연애편지’는 픽션을 바탕으로 한 소설과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직접 전하는 편지 양식을 합한 경우라고 했다.

김훈이 흰 메모장 앞에서 시를 쓰듯 분명한 대상을 두지 않고 연애편지의 수신자인 ‘너’가 이인칭인지 삼인칭인지, 무인칭 인지 알 수 없게 한 것, 서영은이 허구적인 동성애 관계를 이용한 새로운 글쓰기를 선보인 것 모두 새로운 문학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연애편지는 글쓰기 실험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소설이 허구성을 지녀도 비난받지 않는 다는 것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문학성이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작가의 연애편지가 문학 장르로 인정되는 한 그 진실성을 포함해 허구성까지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작가들의 연애편지>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작가들의 글쓰기 방식은 새로운 문학에의 시도입니다”

김다은은 27인의 작가들이 공개한 연애편지는 이처럼 저마다의 문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편지는 쓴 이와 받은 이 사이에서 내밀성을 갖지만 출간하게 되면 ‘보편성’을 얻게 된다. 함정임이 J에게, 하성란이 H에게 보낸 편지를 예로 들어 보자.

함정임이 보낸 편지의 수신자인 J는 ‘서양 철학 전공자로 1994년부터 독일에서 유학 중인 가장 오랜 이성 친구’이지만 편지의 출간과 함께 모든 독자들의 J로 변하게 된다. 두 번째 편지의 H도 소설가 하성란의 H가 아니라 한때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바람을 맞아 본 적이 있는 모든 여성들의 H가 되는 것이다. 작가의 연애편지가 출간과 함께 내면성에서 보편성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이유는 두 사람 사이에 `독자`의 존재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역자가 작가들의 연애편지를 받아내기 위해 그처럼 끈질기게 매달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가의 편지가 문학 텍스트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출간’의 벽을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얻은 편지들을 책으로 묶어 낸 지금의 심정은 어떨까.

이에 대해 김다은은 “편지를 건네 준 작가들은 물론, 편지 공개에 동의한 작가들의 아내와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다은은 지금 ‘작가들의 우정편지’를 기획중이다. 작품에 대한 비평, 작가로서의 고민 등을 담은 작가들의 편지를 묶는 작업이다. “학계의 중요한 자료로도 쓰일 우정편지 시리즈에 참가를 원하는 작가가 있다면 언제든 연락 달라”며 환히 웃는 그에게서 서간체 문학에 대한 비장한 책임감 같은 것이 엿보였다. 김다은에게 있어 ‘편지’란 피었다 사라진 열정의 흔적이 아니라 개인과 역사에 대한 중요한 기록이며, 아직 봉오리조차 맺지 못한 새로운 문학 장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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