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리포트] 강세환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 <시가 되는 순간>(예서. 2020)은 삶의 순간과 시의 순간이 만나는, 시가 되는 순간의 간절한 기록이다. 평범한 일상적 삶에서 삶을 견디며 삶을 밀고 나가는 혹은 삶을 감수하는, 시인의 사유와 태도가 잘 구사되어 있다.
이 시집의 미덕은 오랫동안 시의 현장에서 혹은 변방에서 시인의 정서와 감성을 잃지 않고 시 쓰기와 시인의 삶에 대해 고백하고, 집중하고, 투명하게 정직하게 털어놓은 점이다.
강세환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시는 삶의 어떤 체험으로부터 시작되었겠지만 또 어떤 허구의 세계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이번 시집에선 이런 일들이 많았다. 어떤 현실적 상황에 의지했던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손끝에서 발끝에서 그리고 시 끝에서 시가 되었다. 시가 되는 순간! 어떤 자신감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상상력도 막 솟아나는 경이로운 순간들이었다. 시의 순간! 그 순간은 차(車)도 포(包)도 다 떼어 놓고 어쩌면 장기판도 다 떼어 놓는 순간이었다.” -시인의 <인터뷰> 중에서
일상을 시로 만든 이 기록은 시인의 정서와 서정을 바탕으로 한 상상력과 허구의 세계이다. 사실 삶의 한순간이 시의 순간이 될 수밖에 없고 시의 순간이 삶의 한순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감수성과 직관(直觀)이야말로 시집 최초의 동기이며 계기다. 이 시집은 그런 행위를 통해 시의 순간과 삶의 순간을 동시에 복원했다. 그가 쓴 <물안개의 향방>이란 시다.
저 안개라도 한 입 가득 물고 있어야 할 것만 같다...입에 가득 물었던 맹물을 또 뱉어내거나 능선의 잔설이라도 녹여 바람의 어깨에 얹어 놓고 후후 날려보내야 하겠다...강변을 떠도는 물안개가 되거나 가난한 시인의 집 창문 앞에서 머뭇거리거나... 한 호흡하고 나면 물안개는 바위를 삼키거나 눈앞의 뻑뻑한 풍경이 되거나 마침내 동해 먼 바다의 높은 파도가 되거나 안개의 힘이 닿지 않는 계곡의 나직한 물소리가 된다
강 시인은 안개를 입안에 품으려 하고, 그 안개가 숨으로 토해져 어딘가, 누구인가의 안개가 되는 자연의 순환 세계를 그려냈다. 바로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이다.
젊은 날 한때 시를 읽고 시를 사랑하였으나 오랫동안 시를 떠나 시를 잊고 산 독자에게 들려주는 시집이다. 아울러 시적 작업에 관심이 있는 초보 시인도 눈여겨 볼 책이다.
강세환 시인은 1988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시 ‘개척교회’ 등 6편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했다. 시집 <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 8권과 에세이집 <대한민국 주식회사>를 상재했다. 현재 노원도봉 ‘북토크’ 시민모임에서 행사, 기획 등 총괄하고 있다.
이 시집의 시리즈 명 <예서의詩>는 기존 시집과 달리, '해설'을 대신하여 작가와의 '인터뷰'를 마지막에 넣었다. 작가와의 대화 속에서 작가의 생각과 작품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했다.
출판사 <예서>는 “더 훌륭한 분들의 시집을 만들기 위해 앞자리 10명의 자리를 비워둔 채, 시리즈의 시작번을 011, 012로 문을 연다”며 "누구에게나 문을 열려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