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솔` 향 남기고 떠난 시인 박영근
`푸른 솔` 향 남기고 떠난 시인 박영근
  • 북데일리
  • 승인 2006.05.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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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가슴속에 사무쳐 우는 갈라진 이 세상에/민중의 넋이 주인되는 참 세상 자유위하여/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마라/창살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80년대 후반을 풍미한 노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는 연세대 노래패에서 활동하던 가수 안치환이 대학 3학년 때 처음 작곡한 노래다.

‘솔아 솔아~’는 사회 변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서정적인 가사 속에 잘 녹여내 당대의 젊은 가슴을 뜨겁게 쑥물 들였다.

90년대 초반 노래방 인기곡 중에 하나였던 이 노래는 2002년 MC Sniper가 힙합 풍으로 불러 젊은 세대들에게 7,80년대 부모 형제들의 저항정신의 참뜻을 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노래의 가사가 박영근 시인의 시에서 따왔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와 절친했던 박남철 시인조차도 시인이 지난 11일 타계한 이후 알았다며 땅을 치며 통곡을 했다.

노동시의 지평을 연 시인은 1958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구로공단 등지에서 노동자의 삶을 살면서 81년 <반시>에 ‘수유리에서’를 발표하며 등단을 하게 된다.

이후 첫 시집 <취업공고판 앞에서>(청사.1984)를 낸 이래 <저 꽃이 불편하다>(창비.2002)에 이르기까지 혼돈과 해체의 시대를 지키는 밝은 불빛으로 우리 곁에 오롯이 서 있었다.

하지만 자본의 시대는 시인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내 친구 영근이는/....../신동엽 창작기금까지 받은 중견시인인데,/그런 영근이에게/감히 이 세상은/모파상에 대하여 써보라는 둥,/졸업장을 가져와 보라는 둥 웃긴다./중퇴해서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데/무슨 대학교 졸업장이냐/논술학원 교사채용 시험보고 와서/술을 먹는데/영근이는 눈물 글썽이며/자존심 때문에 졸업장 없다는 말은 못하고/문학단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안되겠다고 했단다.”(신현수 ‘박영근’)

친구인 신현수 시인은 시 끝머리에 “세상이여 제발/내 친구 영근이에게 예의를 지켜라.”며 아픈 가슴을 두드렸다.

“모를 일이다 내 눈앞에 환하게 피어나는/저 꽃덩어리/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 돌리는 거/....../그 빛바랜 입술에 침을 내뱉다/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흐느끼는 거//내 끝내 혼자 살려는 이유/네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박영근 ‘저 꽃이 불편하다’ 중)

시인은 꽃 피었다고 분분한 시대에 홀로 눈물을 삼키면서도 환하게 필 꽃을 기다리며 내내 불편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내가 떠난 뒤/맑은 어둠살 속에서 사라지는 경계들을/강물이 절집을 품고 나직하게 흐르기도 하는 것을/내 끝내 얻지 못한 강물소리에 귀기울이는 그대 모습을//이 강에서 하루쯤 더 걸으면/폐사지의 부도를 만날 수 있다”(‘내가 떠난 뒤’ 중)

시인이 떠난 강가에서 흐르는 물소리에 귀 기울인다. 엉겅퀴에 찔리며 솔잎을 씹으며 그리움으로 한 생을 살았던 시인이 저만치 강을 건너고 있다.

“부르네 물억새 마다 엉키던/아우의 피들 무심히 씻겨간/빈 나루터, 물이 풀려도/찢어진 무명베 곁에서 봄은 멀고/기다림은 철없이 꽃으로나 피는지/주저앉아 우는 누이들/옷고름 풀고 이름을 부르네.//솔아 솔아 푸른 솔아/샛바람에 떨지 마라/어널널 상사뒤/어여뒤여 상사뒤//부르네. 장마비 울다 가는/삼년 묵정밭 드리는 호밋날마다/아우의 얼굴 끌려 나오고/늦바람이나 머물다 갔는지/수수가 익어도 서럽던 가을, 에미야/시월비 어두운 산허리 따라/넘치는 그리움으로 강물 저어가네.//만나겠네. 엉겅퀴 몹쓸 땅에/살아서 가다가 가다가/허기 들면 솔닢 씹다가/쌓이는 들잠 죽창으로 찌르다가/네가 묶인 곳, 아우야/창살 아래 또 한 세상이 묶여도/가겠네, 다시/만나겠네.”(박영근 ‘솔아 솔아 푸른 솔아-百濟. 6)

시인이 머물렀던 강 언덕에 솔 향 가득하다. 바람 불어 송홧가루 날리면 시인이 피우고 싶던 꽃 맘껏 피겠다. 송진처럼 그리움이 쩍쩍 묻어나는 봄에......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fargo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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