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여행]산벚꽃 은어떼 넘실대는 섬진강
[책과여행]산벚꽃 은어떼 넘실대는 섬진강
  • 북데일리
  • 승인 2006.04.2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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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마이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지리산 자락을 휘돌아 구례 하동에서 잠시 쉬었다 남해에 이르니 섬진강이라. 봄이 잘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산벚꽃 흐드러진/저 산에 들어가 꼭꼭 숨어/한 살림 차려 미치게 살다가/푸르름 다 가고 빈 삭정이 되면/하얀 눈 되어/그 산 위에 흩날리고 싶었네”(김용택 ‘방창(方暢)’)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그래서 당신>(문학동네.2006)에게 산벚꽃이 흐벅진 산에 들어 화창한 봄날을 내내 즐기라고 손짓한다.

섬진강을 따라 산수유 산벚꽃 겁나게 피어있는 구례로 떠나보자. 구례가 고향인 이시영 시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노고단 밑 구례구역의 황새는 언제 봐도 한쪽 다리를 물속에 박은 채 남은 다리는 외로 꼬고 서 있었습니다. 작년에 봐도 재작년에 봐도 재재작년에 봐도......”(이시영 ‘구례구역의 황새’)

내친 김에 구례구역에서 성삼재까지 간 후 노고단의 운해를 보는 것도 좋겠다. 날씨가 좋으면 섬진강 줄기를 따라 멀리 광양만이 보인다.

“절명하듯 동백꽃 지는/화엄사 곁에 두고//전남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매천사당/뜰 앞 매화향기 높은데//병든 사직의 야록은 끝나지 않았다는 듯/초상화 둥근 안경 너머/눈빛이 시리다”(복효근 ‘매천사당에서’)

한일합방 때 아편을 먹고 자결한 황현 선생의 사당에서 잠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산길을 걸으면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린다.

“이 세상 꼴깍 모르고 지나치고 말/여름 풀꽃들을/범종 소리가 불러 세워/산 깊이 하얗게 흩어졌음을/안다, 이 늦은 시간의 길 끝에/화엄이 있어 화엄을/찾는 마음의 그늘 맡/환하게 지우고 가는/타종, 섬진강 살 같은 그물이 일고/어머니의 젖꼭지를 떠나온/입술이 씻겨진다.”(신용목 ‘화엄사 타종’)

시린 눈빛과 불끈 쥔 주먹을 잠시 펴고 화엄사 종소리를 들어보라. 마음에 드리워진 그늘이 환하게 펴지리라. 그리고 눈을 들어 섬진강을 바라보면,

“복사꽃이거나 아그배꽃이거나/새보얀 꽃그늘 강물에 어룽대던가/섬진강 상류 압록물에/달빛은 욜량욜량, 바람은 살랑살랑/너와 난 마냥 설레였던가//그랬던가, 어느 순간/강물은 마냥 은빛으로 술렁이던가/그것이 물너울인 줄 알았더니/그것은 은어 떼 돌아오는/은어 떼 돌아와선 짝짓기하는/그 번뜩이는 번뜩이는 뒤설렘이었다니!”(고재종 ‘은어 떼가 돌아올 때’)

은빛 물고기들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산수유, 산벚꽃, 진달래의 노랗고 하얗고 빨간 봄 물결을 따라 은어 떼가 넘실댄다.

“앞산/산벚꽃/다 졌네/화무십일홍, 우리네 삶 또한 저러하지요/저런 줄 알면서 우리들은 이럽니다/다 사람 일이지요/때로는 오래된 산길을 홀로 가는 것 같은 날이 있답니다/보고 잡네요/문득/고개 들어/꽃,/다 졌네”(김용택 ‘화무십일홍’)

“아이구야, 꽃 다 져 버렸네 시방”하고 탄식만 할 게 아니다. 차를 타고 눈처럼 쌓인 산벚나무 사이로 은어가 팔딱 뛰는 구례로 떠나보자. 금요일 밤에 용산역에서 야간열차를 타는 것도 별미다.

(사진=구례군청 제공)[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fargo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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