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 전 눈과 함께 왔다가 사람들 가슴 속에 <호랑이 발자국>(창비)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던 손택수 시인이 다시 돌아왔다. 사라진 시인을 두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네, 어디로 갔네, 말들이 많았지만 결국 발자국을 남긴 것이 화근이었다.
호랑이 발자국은 쌓이는 눈으로 지울 수 있었으나, 물새 발자국은 화살촉 모양의 화석으로 남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꽂혀 있었던 것이다. 그새 시인은 200년을 뛰어 넘어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가 이별하는 나주의 어느 주막집에 가 있었다.
“초가 주막 새벽 등불 푸르스름 꺼지려는데/일어나 샛별 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두 눈 만 말똥말똥 둘이 다 할 말 잃어/애써 목청 다듬으나 오열이 터지네.(‘밤남정 이별 栗亭別’)
(茅店曉燈靑欲滅 起視明星慘將別 脈脈嘿嘿兩無言 强欲轉嗅成嗚咽.)
1801년 음력 11월 21일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은 생전의 마지막이 되어버린 밤을 밤남정에서 보내며 애끓는 심사를 노래한다. 이튿날 두 형제가 헤어진 지 16년 만에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병사하게 되고, 이년 후 밤남정을 지나던 다산은 목을 놓아 울었다고 전해진다.
손택수 시인이 쓴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아이세움. 2006)는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지에서 기록한 한국 최초의 어류학서를 아름다운 시와 함께 풀어 쓴 책이다.
다양한 바다생물을 세밀화로 그려 넣은 책은 바다이야기와 편지와 산문이 시인의 세심한 설명 속에 바닷물처럼 잘 스며들어 있다. 물새 발자국 끊어진 곳에서 훨훨 날아 흑산도로 간 이유에 대해 시인은 “한 시절을 바다에서 보낸 빚을 갚고 싶어서였다”고 말한다.
시인을 따라 흑산도 바닷가를 걸으면 소라가 잉잉거리고 게가 딱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200년 전 바닷가를 수놓았던 무수한 생물들이 살아 숨 쉬며 우리 바다생물 연구에 큰 발자국을 남겨놓았다.
시인의 다음 발자국이 또 궁금해진다.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fargo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