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의 피 뽑아먹는 나는 냉혈인간?
사형수의 피 뽑아먹는 나는 냉혈인간?
  • 북데일리
  • 승인 2006.04.04 0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화 가능성이 결여된 극악무도한 자들을 국고를 축내가며 격리시켜 늙어 죽게 만드는 일은 그 어떤 형벌보다 잔인하다. 절실히 이 세상과 이별을 원하는 자는 보내줘야 하는 것도 도리라고 생각한다”

사형제를 적극 찬성하는 이 발언은 역설적이게도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유영철이 모 방송사에 보낸 편지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사형제 폐지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 2일 천주교 정진석 추기경은 서임 후 첫 공식 미사에서 “사형제 폐지 등 생명 존중 운동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반면 어머니와 아내,4대 독자 아들을 한순간에 잃고도 종교의 힘으로 범인을 용서한 고모씨는 방송에서 "국가가 피해자 가족의 상처를 치유해 주기 위해 무슨 일을 했냐"고 되물어 그간의 고통스런 나날들을 짐작하게 했다.

트루먼 카포티의 대표작 <인 콜드 블러드>(시공사.2006)도 당시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가족 집단살인을 소재로 한 실화 소설이다. 1959년, 미국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에서 일가족 네 명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신문에서 이 기사를 본 카포티는 친구인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의 저자)와 함께 이 마을을 방문한다. 범인들은 곧 체포되었고, 사형을 기다리며 단식중인 범인에게 음식물을 먹이면서까지 인터뷰한 자료는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을 파헤치는 `세계 최초의 팩션`(팩션;팩트와 픽션의 합성어로 실존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한 예술장르)을 낳는 계기가 됐다.

랜덤하우스가 선정한 20세기 논픽션 베스트 100선에 선정된 이 책은 그러나 기자윤리라는 도덕전인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사형을 선고받은 스미스는 카포티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고 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지만, 이미 살인과 관련한 이야기를 다 들은 카포티는 스미스의 구원요청을 무시했고 사형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결국 스미스의 죽음에 무관심했던 자신에 대한 비난을 괴로워하던 카포티는 마약과 동성애에 취해 살다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을 집필할 당시의 트루먼 카포티를 그린 영화 `카포티`는 2005년 전미비평가협회에서 선정한 최고의 작품에 선정되었고, 트루먼 카포티 역을 맡은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스미스의 죽음에 괴로워하는 카포티의 행동이 진심이었는지 거짓이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인터뷰 과정에서 사형수에게 동정심을 느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러나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그의 심중을 명확히 읽어낼 수는 없다. 정말 카포티가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실(fact)만을 주사기로 뽑아가는 정말 ‘냉혈인간(in cold blood)’이었는지 궁금증이 더해만 간다.

(사진=영화 `카포티`중)[북데일리 문수인 기자] beihanshan@yahoo.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