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렁이 엄마`의 `백만불짜리 편지`
`무지렁이 엄마`의 `백만불짜리 편지`
  • 북데일리
  • 승인 2006.04.0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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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의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남의 행복과 사랑을 `질투`하지 않는 여유 때문이다. 노희경에게 `행복`은 나이와 재물, 명예와는 무관한, 모두에게 같은 질량으로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 북데일리(www.whitepaper.co.kr) 김민영 기자

행복의 무게를 체득한 작가는 `아이돌 스타와 시청률의 상관성`에 매달려 조연을 주연배우의 들러리로 세우거나 조연에게 주어진 대사를 허투루 다루는 법이 없다.

KBS 2TV `굿바이 솔로`에서 미영 할머니로 분한 원로배우 나문희는 조연이다. 이 드라마엔 조연이 없다지만 다른 인물에 비해 카메라의 축복을 덜 받으니 그녀는 조연이다.

말 못하는 할머니는 상대방에게 `무식하게` 말을 건다. `나홀로` 밥집 주인장이다. 목에 매달은 흰색 보드판에 "뭐주까"를 써서 주문을 받는다. 철자나 맞춤법을 무시하고 괴발개발 쓴 글씨, "울고시픔 울어"라며 상처받은 이들을 토닥인다.

이 못 배우고, 말 못하는 할머니가 한자 한자 써서 보여주는 행위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2003)에서 보여준 사랑 고백보다 정겹다. 시청자들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미영 할머니의 눈빛을 보며 일희일비한다. "우리할머니가 생각난다"거나 "절로 가슴이 아프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미영 할머니의 눈빛은 백만불짜리다. 한 회 평균 2~3씬 정도 나오면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거부감없이` 역할을 소화해 낸 `관록의 연기자` 나문희의 공이 크지만 여기에 조연을 빛나게 하는 작가 노희경의 힘을 모른 채 넘어갈 순 없겠다.

그러니 노희경만한 작가가 또 있다면 우리에겐 더없는 행복일 것이다. 변두리 인간 군상들의 풍경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작가 김옥숙은 그런면에서 노희경과 닮은 꼴이다. 그는 2003년 <너의 이름은 희망이다>로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삶의 현장에 뿌리를 둔` 작가다.

김옥숙은 <희망라면 세봉지>(휴먼하우스, 2006)에서 삶의 신산함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눈물겹고 아름다운 일인지.

불기 없는 싸늘한 지하방에서 "라면이 먹고 싶다"며 훌쩍이는 아이를 안고 눈물짓는 엄마(희망라면 세 봉지),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바라보며 읊조리는 아내의 사부곡(가지 못한 길) 등 하나같이 실수하고 넘어지고, 후회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내 가족과 이웃, 우리 자신의 못난 모습이다.

"살다보마 해가 뜨는 날도 있고 바람 부는 날도 있는 기다. 눈보라 치는 날도 있고 말이다. 지금은 추븐 겨울이지만 쪼매마 이쓰마 니한테도 꼬치 피는 보미 꼭 올 끼다. 내는 우리 아들을 민는다. 사랑한데이! 우리 아들."

책에는 굿솔의 미영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늙은 엄마가 등장한다. 실직한 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칠순에 접어든 노모는 글을 익혀 `사랑하는 아들에게` 삐뚤빼뚤 편지를 보내고(희망부적), 10년 만에 도둑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한눈에 알아보는 아버지와 불효에 대한 용서의 마음으로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하는 아들(뚝지와 아버지)이 등장한다.

작가 김옥숙은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통해서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곧 희망"이라며 "삶을 긍정하고 뜨겁게 끌어안는 사람들 곁엔 늘 희망이 있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매일매일이 생의 마지막 날처럼 특별하고 소중한 날"이라고 속삭인다.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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