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지나가는 말걸기 "도에 관심 있나요"
목사의 지나가는 말걸기 "도에 관심 있나요"
  • 북데일리
  • 승인 2006.03.3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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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도에 관심 있으세요?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 한번쯤 받아봤을 질문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풀지 못하면 잡아먹었다는 스핑크스처럼 도인(?)의 질문은 아주 집요하다. 직장문제로 고민하던 한 샐러리맨이 도인을 따라나섰다 낭패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도인; (관상을 보면서) 당신은 기가 막혔으니 기를 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화...

샐맨; 어떻게 하면 될 지...

도인; 300만 원 짜리 처방과 500만 원 짜리 처방, 그리고 1000만 원 짜리 처방이 있소.

샐맨; 허억!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도인; 그러니 뚫어주어야 한단 말이오. 막힌 기를... 헛험!

그렇다면 과연 도(道)란 무엇일까. 하늘에 태양이 다니는 길인 황도(黃道)가 있듯, 땅에도 분명 길이 있다. 어느 시인이 “길 위에서 길을 묻는다”고 한 것은 단순한 ‘길(路)’이 아닌 ‘길(道)’을 찾는 자문이라고 하겠다. 하여 동양에서 공부라 함은 곧 도를 찾는 과정이었고, 젖을 떼자마자 사서삼경을 손에 쥐어주었다.

기독교인이면서 동양철학에 밝은 이헌주 목사의 <대학 중용 읽기>(삼인.2006)는 유교의 경전을 읽으면서 선인의 지혜를 현대적 의미로 풀어낸 한 구도자의 사색의 기록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의 대화를 통해 노자의 ‘도덕경’을 예수와 노장사상을 넘나들며 넉넉하게 쓴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부터 이 책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진정 ‘도를 찾는 사람(도찾사?)’이 얻고자하는 ‘진리가 통하는 깊은 곳’으로 내려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학에서는 도(道)보다는 ‘이익’을 우선으로 가르친다. 이로움을 추구하는 학문을 배운 사람이 사회에서 과연 중용(中庸)의 도를 실천할 수 있겠는가. 중(中)은 하늘이요 용(庸)은 인간이라, 하늘과 사람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면 그저 위만 쳐다보는 사람만 중용(重用)하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모든 일을 무위로써 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베풀며 만물을 이루어내되, 그 가운데 어떤 것을 가려내어 물리치지 않으며, 낳고는 그 낳은 것을 가지지 않고, 하고는 그 한 것을 뽐내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머물지 않음으로써 사라지지 않는다.”(是以聖人, 虛無爲之事, 行不言之敎,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爲而不恃, 功成而不居, 夫惟不居, 是以不去.)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이 말은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지긋이 가르쳐주고 있다. 끝없는 생의 여정에서 가끔 발밑을 보면 내가 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았는지 톡 톡 느껴질 때가 있으리라.

도인이 붙잡지 않아도 이제 시시때때로 자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정말 도에 관심 있으세요?"

(사진=공자의 초상화)[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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