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얼굴 가득 주름진 노인이 두꺼운 안경을 낀 채 턱을 괴고 있다. 아래로 떨군 시선과 흑백의 배경은 무언가 심각한 분위기를 풍긴다. <어느 독일인의 삶>(열린책들.2018) 표지 속 주인공은 106세 노인 브룬힐데 폼젤이다.
그는 히틀러 최측근으로 나치 선전부 장관을 맡아 선동에 앞장섰던 요제프 괴벨스의 속기 타자수 겸 비서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 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선전부에 들어간 것도 내 개인적인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어요.” (본문 중에서)
시종일관 자신은 그저 시대에 끌려다녔을 뿐이며, 정치에 무관심했고 출세에 대한 열망이 있었을 따름이고 그저 맡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평범한 사람이라고 증언한다. 책은 자신을 그저 시대의 격변에 휘말려 들어간 무지하고 평범한 인간이었다고 주장하는 폼젤의 생전 이야기를 정치학자 토레 D. 한젠이 정리한 내용이다.
저자 한젠은 폼젤의 삶을 통해 개인의 이익에 매몰되어 이성의 눈을 감는 순간 이기주의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되묻는다. 동조와 무시, 방관과 침묵이 가져오는 파장은 결국 악의 팽창을 도래할 수 있다는 통찰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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