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 좁은 골목 손수레 가득 폐지를 싣고 가는 할머니. 폐지가 할머니를 밀고 가는지 할머니가 끌고 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깡마른 할머니. 뒤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다. 가는 길 내내 뚫어져라 땅만 살피며 등을 점점 더 납작하게 구부리신다. 늘상 바닥만 쳐다보며 다닐 듯한 모습. 앞만 보고 달리느라 하늘 바라볼 여유조차 없는 우리모습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할머니는 이리저리 땅을 살폈어. 종이를 찾는 거야. (…) 그래서 점점 더 등을 납작하게 구부리고 땅을 뚫어져라 살피게 되었어. 그럴수록 할머니는 하늘을 쳐다보는 일이 줄어들었지. 어느 날부터인가 하늘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까맣게 잊게 되었단다. (9쪽)
단조로운 일상 속 따뜻하고 가슴시린 이야기를 담은 책<우주 호텔>(2012. 해와나무)이 출간됐다. 최근 몇 년 사이 주변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쉽게 보게 된다. 허리가 구부러진 채 시선은 온통 바닥을 향해 곧 붙어버릴 것 같은 모습. 작가는 ‘종이 할머니’의 삶을 현장감 있게 서술하며 소외계층의 고단한 삶을 조명한다.
‘허리를 펴고 똑바로 살면 뭐혀. 허리가 구부러질 대로 구부러지면 땅에 납작하게 붙어버리겠지. 그럼 저 갈라진 틈으로 사라지면 그뿐 아니겠어.’ (20쪽)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종이 할머니는 하루 종일 폐지를 모아 근근이 삶을 이어간다. 삶에 대한 관심도 궁금한 것도 없이 살아가던 할머니는 한 아이가 건넨 스케치북을 인연으로, 아이를 통해 잊고 있던 삶의 의미를 찾고 애착을 갖기 시작한다.
공책은 아이가 썼던 건가 봐. 공책을 펴 보니 삐뚤빼뚤, 꼼틀꼼틀, (…) 종이 할머니는 글씨 하나하나가 너무 사랑스러워, 자기도 모르게 그 글씨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매만졌어. (26쪽)
포도 모양의 성 맨 꼭대기에는 두 아이가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어. 그런데 참 이상하지 뭐야. 두 아이 중 하나는 눈이 불룩하게 튀어나오고 입도 개구리처럼 커다랬어. 게다가 팔다리는 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초록빛이었지. 이런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 할머니는 그게 뭔지 무척 궁금했어. ‘희한하다. 다 늙어 빠졌는데 이제 와서 뭐가 궁금하단 말이여’(…)‘그 초록색 아이는 누구일까?’ (42쪽)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를 주제로 삼아, 아이들이 더 깊게 고민할 수 있도록 만든 이야기다. ‘우주 호텔’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은 현실세계를 반영하고, 환상이 더해져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폐지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할머니, 바람처럼 왔다 종이 몇 장을 두고 가는 아이를 기다리게 된 할머니의 모습을 거짓 없이 표현한다. 더불어 모노톤의 색체감과 꼴라주 기법으로 그려진 그림은 동화에 환상성을 더해 보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하기도 하고 낯선 세계를 엿보게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