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아느냐 '조선의 미'
너희가 아느냐 '조선의 미'
  • 김현태기자
  • 승인 2011.02.22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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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모르는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


[북데일리] 막사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교토에 있는 대덕사(大德寺)라는 절에 고이 모셔져 있습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그릇입니다. 이 그릇을 보고 있으면 그 자연스러움에 놀랄 지경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본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런 그릇은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자연이 조선의 도공 손을 빌려 만든 것이다.” -최준식, 네이버 캐스트, 위대한 문화유산, 막사발

막사발과 국보. 평범함과 궁극. 둘 사이의 간극에 대해 궁금한 이는 <미의 나라 조선>(한울. 2011)을 필이 읽어봐야 한다. 책을 읽고 나면 조선은 더 이상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다. 조선에 대한 이 꾸밈말은 적어도 '고요한 미의 나라'로 바뀌어야 한다.

책은 '야나기, 아사카와 형제, 헨더슨의 도자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있다. 일본인 수집가이자 민예운동가인 야나기 무네요시를 비롯한 그의 동호인들이 도예를 통해 미의 나라 조선을 발견한 과정을 서술했다.

이들은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시대의 백자, 청화백자, 분청사기를 보며 직관적으로 조선의 미에 눈을 떴다.

'어느 날 밤 경성의 고물상 앞을 지나다가 보니... 조선의 물건들 사이에 하얀 항아리 하나가 전등불 아래 반짝 빛나고 있었다. 은은하게 불룩하고 둥근 이 물건에 마음이 끌려 한참 들여다 보았다.' 109쪽

소수 일본인의 이 발견이 주는 의미를 알기 위해선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책에 따르면 임진왜란은 '미의 전쟁'이다. 일본서는 임진왜란을 도자가를 둘러싼 전쟁이라 부른다. 이 말이 맞다면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뺏기 위해 싸움을 벌인 셈이다.

당시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이들은 일본도자기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조선 말 전통적 요업은 국운과 함께 점차 퇴조했다.

그런 상황에서 1910년대 아사카와 형제나 야나기가 조선공예의 미를 재발견했다면, 그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조선인 식자들마저 천하게 여겨 미처 보지 못했던 공예의 미를 그들이 발견했다면 이는 어떤 의미에서 ‘발견’의 차원을 넘어 숨어 있는 미를 ‘발굴’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224쪽

야나기는 독특한 심미안으로 조선 도자기의 가치를 알아봤다. 그는 1931년 3월 8일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기자에몬이도(喜左衛門井戶)를 손에 들고 볼 수 있었다. 기자에몬이도는 그가 말하듯 조선의 잡기로 만든 그릇이었다. 이른바 '막사발'이다.

야나기는 대덕사의 국보를 보고 "훌륭한 차완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다지도 평범한가!"라고 감탄했다. 그는 청화백자의 형상에 대해 ‘인간의 따스함, 고귀함, 장엄함’을 발견했다고 토로했다. 그가 조선도자기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한 일본 학자의 말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의 일상서 발견하는 '친근함의 미'이며 거기에 머물러 있는 '정의 미', 그리고 '화목의 미'다. 야나기는 조선도자기에서 보는 자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미의 신비를 느껐을 겁니다." 16쪽

그러나 한국의 도자기에 몰두한 야나기와 헨더슨은 우리 사회 일각으르부터 비판과 비방의 대상이다. 이는 지은이가 책을 쓴 이유 중이 하나다. 그러나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이들은 모두 한국의 전통 공예품을 수집하거나 도예를 수행하는 데 몰두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수집한 것은 부유한 사람들이 흔히 장식품으로 모은 진귀하고 귀족적인 보물이 아니며 호사가들이 탐하여 모은 골동품 또는 기호품의 집합도 아니다. 이들은 서민들의 생활 잡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이어 이 발견을 새로운 미의 세계로 승화시켰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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