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을 위해 일한다?
인간은 생각을 위해 일한다?
  • 김현태기자
  • 승인 2010.11.0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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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가 만든 개념인 '밈'의 정체

[북데일리] 당연한 현상을 거꾸로 생각해보는 일. 창의적인 발상이다. 쉽게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코페르니쿠스가 그랬듯, 그 역발상이 진리가 되었을 때 경외심이 인다. 더불어 한 켠에 이는 자괴감 혹은 의구심을 어찌할 수 없다. 왜 그전엔 생각을 못했을까.

유전자가 인간을 자기복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인간은 유전자를 위해 복무하는 '생존 기계'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 주장은 비슷한 감정을 일으킨다. 사실 도킨스의 이 도발적인 '생각'은 인간은 원숭이의 자손이라는 말에 버금갈 만큼의 소용돌이를 독자의 마음 속에 일으켰다.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로 한 방 맞은 독자들은 이제 '2탄'을 각오해야 한다. 바로 <밈>(바다출판사. 2010)이다. 전자가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유물론적 존재의 근원을 건드렸다면 <밈>은 나, 내 의식마저 회의를 품게 한다.(물론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 일부에 '밈'이 등장함으로 이미 예고된 바 있지만)

먼저 밈(Meme)'은 무엇인가. 그 정의는 '모방처럼 비유전적 방법을 통해 전달되는 문화의 요소'다.

책에 따르면 당신도 '밈 머신'이다. 우리는 밈의 전파와 확산을 위해 뇌와 몸을 내주는 거대한 '복합체'이다. 인간의 뇌는 물론, 의식과 자아까지도 밈을 통해 생산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책은 생각을 우리의 창조물로 간주하고 그것이 우리를 위해 일한다고 보는 대신, 생각은 스스로의 복사를 위해 일하는 독자적이고 이기적인 '밈' 이라고 화두를 던진다.

생각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수많은 다른 생각들과 싸운다. 결국 '선택'된 생각이 글로 나타난다. 책은 생각이 출판되기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내 마음은 생각의 격전지나 다름없었다. 내 안에는 수많은 생각이 있지만, 최종적으로 인쇄될 수 있는 수는 아주 적다. '나'는 무에서 생각을 창조해내는 독립적인 의식주체가 아니다. 내 뇌는 과거의 교육으로부터, 독서로부터, 오랜 사고로부터 무수히 많은 밈을 얻었고, 내 손가락이 이 문장을 타이핑하는 동안에도 내 내뇌에서 그 밈들이 뒤엉켜 발효하고 있다.

나의 내부 선택과정이 끝나서 원고가 내 손을 떠나면, 또 다른 선택이 개시될 것이다. 우선은 출판사가 선정한 검토자들에 의해서, 다음에는 서평자들에 의해서, 그리고 바깥세상의 서점들과 독자들에 의해서, 이 책이 수백 권 팔릴지 수십만 권 팔릴지는 전적으로 그 선택과정에 달렸다.' 378쪽

저자 수전 블랙모어는 영국의 심리학자이자 과학 저술가이다. 1990년대 후반, 병석에서 밈meme에 대한 글을 읽게 된 것을 계기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탄생시켰던 밈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체계화시켰다.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큰 뇌, 의식과 자아까지도 밈을 통해 생산되었다는 주장을 편다.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에 환호했던 독자들이 이 저자가 주장하는 '밈학'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참고로 도킨스는 추천사를 통해 "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녀가 밈 공학이라는 어려운 작업에 용기와 헌신과 재주를 쏟아 준 것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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