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고통의 미학 '숨그네'
슬픔과 고통의 미학 '숨그네'
  • 서유경 시민기자
  • 승인 2010.10.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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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조여오는 삶... 헤르타 뮐러의 빼어난 글솜씨

 


[북데일리] 전쟁을 소재로 한 글을 읽고 나면,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상관없이 현재의 삶에 한없는 감사를 느낀다. 죽음과 삶이라는 두 가지가 놓여진 삶이 바로 전쟁에서의 삶이 아닐까. 죽음을 선택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선택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어떠한 댓가를 치뤄야 할 것이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해서, 전쟁을 다룬 소설은 언제나 숨막히는 전개와 극도의 긴장감이 넘친다.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문학동네, 2010)는 달랐다. 영혼을 조여오는 삶에 대해 헤르타 뮐러 <숨그네>는 너무도 아름답게 그려냈다. 비참함은 결코 들어오지 못하도록 촘촘한 숭고함만이 가득했다. 하여, 소설은 더 빛나 보였다.

<숨그네>는 열 일곱살 소년, 레오가 소련의 강제수용소에서 5년간 생활한 이야기다. 소설은 레오가 루마니아에서 수용소로 떠나기 위해 짐을 싸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소설은 일반적인 전개 방식이 아닌, 레오의 시선을 따라 흘러간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이 아닌 감정의 흐름이었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기계적이었고, 잠자리와 음식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어, 온 몸으로 느껴야 했을 공포, 전쟁은 끝났지만, 수용소는 언제나 전쟁중이었다. 레오가 ‘배고픈 천사’라 부르는 배고픔은 사람들의 영혼을 조종했다. 배고픈 천사는 빵과 양배추수프를 원하고, 아내의 음식을 빼앗고, 누군가를 고발하고, 도망치게 하고, 심지어 죽은 자의 옷을 벗기게 한다.

 ‘배고픈 천사가 나를 저울에 올릴 때 나는 그의 저울을 속일 것이다. 아껴둔 빵처럼 나는 가벼워지리라. 그리고 아껴둔 빵처럼 씹기 어려워지리라. 두고 봐,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간단한 계획이지만 오래 버틸테니까.’ p. 251

 잠잠한 고통의 기록들은 레오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이어진다. 전쟁에 속해 있던 삶은 현실에 적응할 수 없었다. 거대한 벽처럼 전쟁과 현실에 분명한 경계가 있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심지어 수용소에서 함께 있었던 사람들, 아무도 레오를 이해할 수 없다. 5년 동안 레오를 지배한 본능은 수용소 이후에도 그를 놓아 주지 않는다. 오직 배고픈 천사만이 레오를 온전하게 소유하며 이해한다.

 <숨그네>는 헤르타 뭘러의 동료 '오스타 파스티오르'가 들려준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렸기에 소설보다는 사실에 가깝다. <숨그네>는 시였고, 산문이었다. 때문에, 더 간절하고 더 참혹하다. 분명 그러할진대, 헤르타 뭘러는 어찌도 이렇게 잠잠하게 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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