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故 정미경 1주기...마지막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 출간
소설가 故 정미경 1주기...마지막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 출간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8.01.18 12: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벽까지 희미하게> 정미경 지음 | 창비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18일 오늘은 소설가 故 정미경의 1주기다. 1987년 신춘문예에 희곡 <폭설>로 세상에 나와 제목처럼 겨울에 떠났다. <비소 여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나의 피투성이 연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프랑스식 세탁소> 등을 10여 작품을 썼다.

그의 유고 소설집 <새벽까지 희미하게>(창비.2018)는 1주기에 맞춰 출간됐다. 소설 5편과 고인의 동료 소설가 정지아, 정이현 그리고 남편 김병종 화백의 추모 산문 3편이 묶었다. 문학동지이자 연인이었던 아내를 떠나보낸 김병종 화백이 쓴 추모 산문에는 급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던 당시 일과 정 작가 생전 치열했던 창작의 일면이 담겼다.

특히 방배동 반지하 집필실에서 치열하게 창작에 몰두하면서도 아내로 엄마로 자식으로 또 소설가로 살아가며 창작의 불꽃을 잃지 않았던 모습들은 그의 작품을 다시 찾아보고 싶게 한다. 17년 동안 썼던 집필실 벽면에는 이런 쪽지들이 붙어 있었다.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나를 파괴한다.” “나의 최후를 맞으리라는 그곳에, 칼이 항복한 자를 얼마나 깊이 찌르는지 오직 나에게만 시험하도록.” “책을 끝내는 것은 어린아이를 뒤뜰로 데려가 총으로 쏘아버리는 것과 같다.” (211쪽)

김 화백은 곳곳에 붙어있는 무수한 쪽지들이 흡사 사방에 튄 핏자국처럼 느껴졌다 말했다. 전장 같아서다. 그에 따르면 정 작가는 2000년 무렵부터 거의 모든 작품을 반지하 원룸에서 썼다. 햇볕이 들지 않는 음습한 곳이었지만 그 춥고 스산하고 음습한 공간으로 내려가야만 글이 써진다던 고인의 생전 말을 전했다. 마치 채탄을 하는 광부의 심정이라고 말이다.

치열한 이야기는 이어진다. 점심을 먹으면 오후에 나른해진다며 아침에 나갈 때 챙기는 건 달걀 하나와 삶은 감자 한 알 정도인데 그나마 먹지 않고 들고 왔다. 심지어 긴장이 풀린다는 이유로 서서 쓰는 책상을 구해 대부분 글을 그 앞에서 썼다. 그렇게 써낸 작품들이다.

김 화백은 정 작가의 모습을 ‘나갈 땐 전사처럼 비장했고 돌아올 때 허연 거미처럼 진이 빠져버린 모습이었다’고 회고한다. 치열하고 또 치열하다. 그런데도 그의 작품 곳곳에는 삶과 문학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이 녹아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는 “아아, 인생을 일천 번이라도 살아보고 싶다. 이처럼 세상이 아름다우니까”라는 진한 문장이 그렇다. 또 유고집에 실린 단편 <장마>의 마지막 대목도 그러하다.

“지나온 삶에서, 우연히 다가온 따뜻하고 빛나는 시간들은 언제나 너무 짧았고 그 뒤에 스미는 한기는 한층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다 해도,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을 하찮게 여기고 싶지 않다.” (189쪽, <장마> 중에서)

일찍 떠나버렸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삶과 문학을 사랑했던 그의 작품들은 아직 우리 곁에 있다. 작품으로 그를 기억하며 추모한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