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여자도...어찌 책에 비하랴
꽃도 여자도...어찌 책에 비하랴
  • 김현태기자
  • 승인 2010.08.04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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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독서광 선비 장혼...독서의 맛이란

[북데일리] <책속의 포스트잇>  아래 글은 장혼(1759~1828)이라는 선비가 쓴 글입니다. 참으로 책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책이 주는 즐거움, 그 어떤 것도 당해낼 수 없다는 거지요. 수백 근 나가는 물건은 들고 다닐 수 없다. 그러나 수백 권 책 속에 든 지식은 돌돌말아 가슴에 담고 다닐 수 있다. 정말 대단한 독서광입니다.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김영사. 이종묵. 2010)은 조선의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명문장가들의 글을 모았다. 글과 음악, 풍류로 시대를 풍미한 선비들의 삶이 멋스럽다. 조선의 학자, 관료, 문인 등이 어떻게 마음을 닦고, 학문을 세우고, 세상을 유람했는지 살펴보는 책이다.

*다섯 수레의 책을 가슴에 담는 방법

사람들이 즐거워할 만한 것은 많습니다. 귀에는 소리가, 눈에는 색깔이, 입과 코에는 냄새와 맛이 그러하지요. 이러한 것들이 눈앞에 몰려들어 마음을 흔들면, 반드시 온갖 지혜를 다 짜내고 위험한 곳을 넘어서면서까지 내 하고자 하는 바를 즐기려고 하지요. 그러나 그 좋아하는 바는 불과 잠깐 사이의 일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음악이 떠들썩하거나 맑은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거나 간에, 연주가 끝나고 나면 산은 텅 비고 물은 흐를 뿐이지요. 하얗게 분을 바르고 새까맣게 눈썹을 칠하고서 웃음과 교태를 바치는 연인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한 번 흩어지고 나면 가물거리는 촛불과 지는 달빛만 비칠 뿐이지요.

난초와 사향이 향을 풍경도 한 번 냄새를 맡고 나면 그만이지요. 맛난 고기가 가득 차려져 있어도 한 번 먹고 나면 그만이지요. 이 모두가 태허(太虛)의 회오리바람이 먼지를 쓸고 가버린 것과 다름이 없겠지요.

이에 비하여 눈과 귀에도 즐겁고 마음과 뜻에도 기뻐서, 빠져들수록 더욱 맛이 있어 늙음이 오는 것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책을 이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혼자 호젓한 때 적막한 물가에 있다 하더라도, 문을 닫고 책을 펼치고 있노라면, 완연히 수백 수천의 성현이나 시인, 열사와 더불어 한 침상 사이에서 서로 절을 하거나 질타하는 것과 같으리니, 그 즐거움이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사람들 중에 나의 진리를 따르고 나와 동조하는 이는 거의 드물겠지요. 육예(六藝)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종사하는 이가 있다면 책과 더불어 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 금과 옥은 보배고, 문장도 또한 보배지요. 백근이나 되는 묵직한 물건은 보통사람이라면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다섯 수레의 책도 돌돌 말면 가슴속 안에 넣어 간직해둘 수 있을 것이요. 이를 쓰면 조화에 참여하고, 우주에 충만하게 되겠지요.

아, 사람이 어찌 쉽게 늘 이를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세상에 이를 소유한 이가 그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는 당신에게 명망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가깝게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사귐이 얕은데 말이 깊은 것은 선철께서 경계한 바지요. 그런데도 족하께서는 저를 못났다 여겨 내팽개치지 않았으니, 이 때문에 감격하여 부끄럽습니다. 보답을 하고자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전에 당신의 문장을 보았습니다. 또한 가히 공교롭고 정치하다고 말할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좋아하는 것은 기뻐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기뻐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대략 배울 줄은 알지만 좋아할 줄 모르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좋아하지만 그 뜻을 가다듬어 그 힘을 다할 수 없다면, 앞서 말한 입과 코, 귀, 눈이 누리는 짧은 즐거움과 그 거리가 한 치도 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와 당신이 서로 권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이 망령되다 마시고 가려 받아들이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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