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바이러스 '마사이족 잔혹사'
공포의 바이러스 '마사이족 잔혹사'
  • 김현태기자
  • 승인 2010.06.1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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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생물학적 유행병 다룬 <대혼란>

 


[북데일리] [책속의 포스트잇] 조류독감, 광우병, 구제역, 사스 그리고 신종 플루. 이들 단어는 이미 낯익어 별 저항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나 관련 산업 종사자들에게는 끔찍한 공포 그 자체다.

<대혼란>(부제: 유전자 스와핑과 바이러스섹스, 알마. 2010)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물학적 유행병에 대한 보고서다. 이 침입자들이 인류의 건강과 환경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 전한다. 두 가지 측면에서 놀라움을 안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괴 바이러스들이 대륙간 교역이 만든 세계화의 유산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재앙은 시작됐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과거'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책 속의 일부(109~116쪽) 내용을 요약해 싣는다.

마사이족과 동아프리카에 살던 다른 유목민들은 우리가 슈퍼마켓에 의존해 식량을 구하는 것처럼 소에 의지하면서 살았다. 마사이족에게 소는 신이 창조한 완벽한 짐승이었다. 소 하나면 우유와 고기, 기쁨과 삶의 안락을 모두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의 피를 우유와 섞어 마셨고 소를 물물교환에 이용해 쇠붙이와 곡식을 구했다. 잠은 소가죽 위에서 자고 상처가 나면 소의 오줌으로 치료했다. 소에게 다정하게 노래를 불러주고 아름다운 문신을 새겨 소의 몸을 장식해주었다.

마사이족은 지혜롭게 질병을 관리했다. 특히 흡혈곤충 '체체파리'를 막는 방목 비결이 있었다. 3,400만 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이 곤충은 소와 소를 치는 사람 모두에게 기생충을 옮겨 '수면병'을 유발한다. 마사이족은 체체파리가 관목이 우거진 지역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런 곳에 사는 영양이나 물소에게 체체파리가 들끓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정기적으로 잡목에 불을 놓고 집약적 방목을 하며 체체파리 창궐지역을 분리시켰다. 소와 인간의 대변을 매우 싫어하는 파리의 습성을 이용해 소의 몸에 똥과 우유를 섞어 발라주었다.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이 지방에는 체체파리와 수면병을 옮기는 기생충을 확실하게 통제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런데 '우역'(rinderpest, 뿔 있는 소의 전염병, 독일어) 때문에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역은 이미 가축을 몰살시키는 죽음의 병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고열이 나고 잇몸에 궤양이 생기다가 12일 뒤에 설사를 하면서 죽는다. 인간 홍역의 친척뻘인 이 바이러스는 8,000년 전에 아시아에서 처음 발생했다.

18세기 유럽 전역에서 우역이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무려 2억 마리 이상의 소들이 죽어나갔다. 이 바이러스는 유럽의 대규모 ‘교역망’을 타고 계속 이동해갔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증기 상선의 노선을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섰다. 1870년대 네덜란드와 미국 무역상들이 이 바이러스를 순식간에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 전파한 것이다.

이 유행병이 아프리카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1887년이었다. 이탈리아 식민지군이 에티오피아를 점령한 군인들에게 식량을 보급하기 위해 인도로부터 바이러스에 감염된 소를 수입한 것이 발단이었다. 완벽한 신참 침입자였던 우역은 그 지역 생태계를 강타했고, 문화 전체를 뒤흔들어놓았다.

가장 먼저 에티오피아의 소 95%가 이 침입자로 인해 몰살했다. 다음으로 소말리아와 수단을 초토화시켰다. 1890년에는 케냐 마사이랜드의 소를 모두 잡아먹은 뒤 희망봉 연안과 저먼 사우스웨스트 아프리카(현재 나미비아)로 퍼져나갔다.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는 이 잡식성 바이러스는 영양 등 야생 유제류까지 수천 마리씩 잡아먹기 시작했다. 동아프리카 소 500만 마리 가운데 90%가 폐사한 것으로 추산됐다.

우역은 마사이 족 소뿐만 아니라 마사이족까지 거의 전멸시켰다. 시신이 대지를 빼곡하게 덮을 정도여서 독수리조차 '나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혼란을 틈타 다른 생물학적 침입자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우역으로 인한 기아를 이겨낸 생존자 중 대다수가 '백색병'이라고 부르는 두창(마마)에 희생됐다.

이어 영국 상선을 통해 남아메리카 '모래벼룩'이 들어왔다. 모래벼룩의 애벌레는 사람의 발을 파고드는데 이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완두콩만한 크기로 자라 패혈증을 유발한다. 아프리카인들은 이 병을 듣도 보도 못했기에 대응 방법을 알 길이 없었다. 수천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벼룩에게 당해 발가락이 한두 개 밖에 남지 않거나 잘려나갔다.

우역이 남긴 끔찍한 유산 중엔 놀라자빠질 사건이 있다. 이 외래종 바이러스가 소 떼와 야생 물소를 전부 먹어치우자 굶주린 사자들이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사자는 사람을 84명이나 잡아먹었다. 그리하여 15년에 걸쳐 1,500명의 인간이 희생됐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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