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의 발명품 알고보니...
다빈치의 발명품 알고보니...
  • 김현태기자
  • 승인 2010.06.11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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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의 도발적 주장... 추적해보니 '원본'은 따로


"책을 펼치는 순간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북데일리] 마케팅 용어로 종종 쓰는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란 이런 상황이 아닐까. 추리를 거듭하며 추적한 논리가 맞아떨어질 때, 그 논리가 세계사의 상식을 뒤흔든 사건일 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첫 문장의 주인공은 개빈 멘지스다. 최근 나온 <1434>(21세기북스. 2010)의 저자다. 그의 가슴에 꽂힌 '진실의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선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문장 속의 '책'이란 중국의 '농서'를 말한다. 왕정은이 지은이이며, 농업기술을 담았다. 1313년에 대량출판 됐다.

저자는 이 농서에서 무엇을 보았길래 그리 놀랬을까.

첫 번째 등장한 도안은 곡식을 빻는 맷돌을 끄는 말 두 마리였다. 그것은 타콜라와 디 조르조가 그린 도안과 흡사했다. 나는 떨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책을 한 장씩 넘겼다. 타콜라와 디 조르조가 그린 기계도안의 원작이 분명했다. 279쪽

타콜라와 디 조르디는 누구인가. 이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서문(12쪽)에 나와 있는 내용이다. 참고로 저자는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오랫동안 탐험여행을 떠난 참이었다.

[어느 아름다운 가을날, 우리는 톨레도와 그 주변을 굽어보는 대성당으로 걸어 올라갔고, 거기에 딸린 작은 호텔에 짐을 풀고 답사에 나섰다. 이웃한 무어 양식의 궁전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의 마드리드 사본 전용 전시실이 있었다. 거기에는 펌프, 수로, 수문, 운하 등 톨레도와 관계 깊은 유물이 집중 조명되어 있었다. 전시실에는 다음과 같은 공지문이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수로를 철저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1490년에 파비아에서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와 만난 것은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이자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물에 관한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알기로 레오나르도는 유럽인 최초로 운하와 수문을 설계하고 펌프와 분수를 삽화로 묘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인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에게 대체 그가 무엇을 배웠다는 말인가?

그 뒤에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레오나르도는 일반용 및 군사용 기계에 관한 디 조르조의 논문 사본을 갖고 있었다. 그 논문에서 디 조르조는 여러 가지 신기한 기계를 삽화를 곁들여 설명했고, 나중에 그것을 본 레오나르도가 3차원 도안으로 다시 묘사했다. 운하, 수문, 펌프 등을 묘사한 삽화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밖에도 낙하산, 잠수정, 기관총 따위의 여러 가지 일반용과 군사용 기계를 나타낸 삽화가 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정리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디 조르조로부터 '자료'를 얻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그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발명가라기보다 삽화가인 것 같았고, 레오나르도보다 오히려 조르조가 더 위대한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디 조르조가 그 환상적인 기계들을 원래 발명한 사람이 아닐까? 아니면 그도 다른 사람의 발명품을 그대로 모방한 사람에 불과할까?

알고 보니 디 조르조는 같은 이탈리아 사람인 마리아노 디 자코포 디토 타콜라(그는 흔히 ‘까마귀’라는 뜻인 ‘타콜라’로 불렸다)에게 연구노트와 논문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타콜라는 이탈리아의 시에나Siena에 살면서 토목공사 사무업무를 보았다. 바다를 본 적도 없고 전투에 참가한 적도 없었지만, 그는 화약무기를 비롯해 외륜선, 잠수부, 난파선 인양장비 등 아주 다양한 항해용 기계의 도안을 그렸고, 심지어 화약제조법과 헬리콥터 설계도 같은 고급정보도 다루었다. 타콜라는 훗날 디 조르조와 레오나르도가 개량해 묘사한 거의 모든 기계 관련 삽화의 원조인 것 같았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평생 바다를 구경한 적 없고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이탈리아의 외딴 고지대 도시에 살던 일개 사무원이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기계들의 기술적 부분을 묘사한 삽화를 그릴 수 있었느냐'는 것.

이 의문은 중국의 '농서'를 통해 해소됐다. 왕정은-타콜라-디 조르디-미켈란젤로의 '계보'다. 이역만리 떨어진 중국의 한 학자와 이탈리아의 ‘평범’한 사람을 이어준 끈은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바로 '1434'에서 찾는다.

1434년 중국 명나라의 정화제독은 엄청난 함대를 이끌고 세계 일주를 했다. 정화 함대는 긴 항해 끝에 이탈리아 피렌체에 도착했다. 이어 교황 유게니우스 4세를 알현한 뒤, 그때까지 중국에서 집대성된 과학지식과 기술을 전달했다. 천문, 지리, 수학에서 인쇄술과 신무기까지 두루 망라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 귀중한 지식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르네상스의 불꽃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와 더불어 '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중국의 정화 함대가 발견했고, 콜럼버스는 중국이 만든 세계 지도의 도움을 받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다른 이에게도 ‘진실의 순간’이 될 수 있을까.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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