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리뷰] 해체 위기의 가족, ‘책’으로 일어서다
[강연리뷰] 해체 위기의 가족, ‘책’으로 일어서다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7.04.21 0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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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저자 김정은의 인문학을 통해 되찾은 ‘가족’ 강연
▲ 강연 중인 김정은 작가(왼쪽), 책 표지(오른쪽)

[화이트페이퍼=박세리 기자] 10여 년간 열정을 다해 일한 끝에 직업병으로 퇴사한 한 엄마는 친가와 외가를 오가며 바쁜 부모의 부재를 견뎌야 했던 두 딸과 드디어 한집에 살게 됐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엄마의 등장에 아이들은 반가움은커녕 “할머니한테 돌아갈래!” “엄마 바꾸고 싶어!”라고 외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 회사에도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이는 파업으로 이어졌다. 맞벌이는 외벌이로 급기야 무수입. 거기에 두 딸 중 큰아이는 가족을 그려보라는 미술심리치료에서 자신과 동생만 그렸다. 동생 한 명만 자신의 가족 구성원으로 인식한 상황이다. 이 가족 괜찮을까?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휴머니스트.2016)의 저자 이야기다.

책은 해체 위기의 총체적 난국에서 벗어난 한 가족 이야기다. 그것도 ‘책’으로 말이다. 지난 4월 19일(수) 경기도 고양시 일산 서구에 자리한 ‘행복한 책방’에서 열린 ‘책 읽기를 통해 화목한 가족 만들기’란 주제의 강연을 통해 내용의 주인공 김정은 작가를 만나 일련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 강연 모습

가족 해체 위기에 작가가 선택한 방법은 ‘책’이었다. 서울 도심에서 아파트를 정리하고 경기도 파주로 이사하며 아이들은 유치원과 학원마저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이사한 곳은 변변한 카페 찾기도 어려울 만큼 아무것도 없었던 그때 운명적으로 성당 옆 공터에 컨테이너로 만든 조그만 도서관을 만난다. 지역 엄마들이 모여 책모임을 하고 있었다.

지역도서관이 없던 시절 그 작은 공간은 지역 엄마들과 아이들이 문화공간이자 공연장, 때로는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엄마들은 매월 1만 원을 걷어 헌책방과 출판단지를 돌며 싼값에 책을 사들이며 직접 만든 작은 도서관에서 공동 육아와 사교육 없는 자립 교육을 실현하고 있었다. 작가는 이때 용기와 깨달음을 얻었다. ‘아!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또 그곳에서 만난 첫 책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을 보고 하루 단 15분만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보기로 작심하고 아이들과 무작정 수십 권의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된다.

■ 가족을 주제로 한 따뜻한 그림책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엄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아이들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가족을 주제로 한 따뜻한 그림책’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로 한다. 이때 선택한 책들은 <너는 기적이야>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아빠랑 함께 피자 놀이를>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아이와 엄마,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책이었다.

▲ 책에 소개된 그림책 일부

또 <엄마 마중> <동강의 아이들> <아빠 잘 있어요?> <리디아의 정원>처럼 부모의 부재와 그 가운데서도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내용도 포함했다. 엄마의 존재를 거부한 아이들은 과연 엄마를 받아들이고 애착을 형성했을까. 책과 벌인 여행은 값진 선물을 안겨주었다. 꼬박 1년 아이들과 함께 치유되고 있었다. 작가는 좀 더 깊이 있는 나눔이 필요함을 느끼고 제2단계 돌입했다.

■ 작가의 유년기의 마음을 담은 작품 함께 읽기

많은 책 중에서 그림책 <바늘땀>과 심리 서적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를 적극적으로 권했다. 전작은 데이비드 스몰 작가의 실제 유년시절 이야기로 매정한 부모 밑에서 세상과 담을 쌓아버린 한 소년의 충격적인 이야기다. 작가는 책을 소개하며 자신과 아이들의 상처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이때 자신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유년 ‘내면아이’를 발견하고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로 도움을 받는다.

이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4년이다. 그런데 아직 한 사람이 없다. 바로 아이들의 아빠다. 다음 단계는 남편 끌어들이기.

■ 남편 끌어들이기 & 남편을 따라 하며 남편이 되어 보기

자신의 상처를 알아보게 되자 남편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한 작가에게 어느 날 남편의 면담신청이 들어왔다. “나 너무 힘들다. 파업도, 가장으로서의 위치도” 이에 작가는 “중요한 것을 찾지 말고 소중한 것을 찾아봐요. 우리”라 말하며 “직장, 재력, 능력, 스펙말고 당신이라는 한 사람의 가치 지금 이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없으면 안 되는 것을 찾자”고 격려했다.

그러자 남편이 일상과 생각들을 글로 적기 시작했고 이는 책을 읽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작가는 남편의 책을 함께 읽었다. 남편과 함께 읽기를 시작한 것. 철학을 전공한 남편의 책은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부터 남편 인생의 책 <공자의 인생>까지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일주일에 한 권씩 읽어냈다. 그렇게 또 1년, 50여 권의 책을 읽다 보니 “마음에 중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혼란의 삶을 살았다면 이제 어떤 일이 생겨도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을 먹었다”고 전했다.

■ 함께 읽기 5년 차, 온 가족이 함께 읽기 시작

드디어 네 식구가 함께 읽기 시작했다. 처음 책 읽어주기를 시작할 때 큰 아이는 7살, 작은 아이는 3살이었다. 어떤 변화들이 있었을까. 큰 아이는 엄마보다 언니가 좋다는 동생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맹자>의 대목을 빗대 엄마에게 일러준다. 군자가 천하를 얻는 것은 백성이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는 통큰 비유까지 할 정도가 됐다. 또 지금은 <돈키호테>가 두 아이에게 인생의 책이 될 정도다. 지금은 온 가족이 거실 한 가운데 책을 쌓아놓거나 늘어놓은 채 ‘가족 구성원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읽기’ ‘특정 작가의 전작 읽기’도 하고 있다. 해체 위기에 선 가족이 책을 만나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책을 읽으며 함께 성장한 한 편의 휴먼다큐멘터리였다.

■ 청중의 질문

한 청중이 지금 가족들이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인지 묻는 말에 역사를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장벽>과 그림책 피터 시스의 <세 개의 황금열쇠>를 읽고 있다고 답했다. 작금의 시국과 무척 비슷하다 느껴져서다. 또 <동물농장>과 <1984>도 마찬가지라고.

소개해준 수준 높은 책들을 과연 10살 내외의 아이들이 읽기에 무리지 않느냐의 질문에 “물론이다”라 명확한 답을 했다. 이는 작가의 경험 때문인데 컨테이너 도서관 시절 다른 아이들도 충분히 소화했고 즐거워해서다.

이어 “대부분 가정에 있는 남편을 함께 읽기에 끌어들이기 쉽지 않다. 오히려 ‘걸림돌’ 수준인 남편을 참여하게 하는 방법이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동심’을 건드려 줄 것을 주문했다. 누구에게나 한 권쯤 있을 인생의 책을 사서 가방에 넣어주고 어느 정도 마음이 열렸을 때 책을 읽어달라고 하거나 독서 모임 등으로 이끌어 독서의 구역을 넓히면 더욱 수월해진다는 답이다.

독서 편식하는 아이들에 대한 처방에 대해서는 작가만의 ‘꼼수 비법’을 공개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식단을 짜라고 주문하면 하루 세끼 아이스크림으로 짜는 아이들의 속성인 만큼 독서 편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책을 엄마의 1차 검열을 통해 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다음 거실에 깔아 놓고 스스로 선택했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또 가족그룹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다른 가족이 빌린 책을 서로 바꿔보면서 관심사를 공유한다. 과학책을 읽지 않은 아이에겐 뇌과학 측면의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무의식의 뇌가 활동하는 ‘졸음이 몰려오는 순간’ 옆에서 책을 읽어주면 어느새 아이가 그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답했다.

한편 ‘행복한 책방’에서 열린 이번 강연은 ‘출판도시 인문학당’의 책방거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출판도시 내외부의 출판사와 출판 관련 단체, 문화단체 및 작은 책방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 행복한 책방 전경(위), 내부사진(아래)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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