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 출신 농사꾼 `글맛은 변산바다 쭈꾸미`
고물상 출신 농사꾼 `글맛은 변산바다 쭈꾸미`
  • 북데일리
  • 승인 2005.11.2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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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개띠. 중학교 1학년 중퇴의 학력에 서울서 고물장수로 연명하다가 고향 부안땅 변산에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농사꾼 중에서도 상농사꾼이 된 사내.

일곱형제 막둥이로 태어나 어머니 치마꼬리 붙잡고 마실다니며 `이야기꾼들의 대지`를 품에 안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선 100권짜리 <한국문학전집>을 표지가 헤지도록 읽어 제낀 문학소년.

젊은 날 시국강연장에 부지런히 드나들다가 94년 창작과비평 추천으로 첫 시집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 가고>(창비. 1994), 산문집 <호박국에 밥 말아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헤던>(내일을여는책. 1996), 두번째 시집 <다시 들판에 서서>(당그레. 2001), 산문집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디새집. 2003)를 쓴 남자.

글 몇 문장으로 사람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시`로 세계를 노래하듯, 박형진(47)을 한마디로 노래하면 `농사짓는 시인`이다.

햇빛에 타들어간 살가죽과 통뼈가 옹골진 팔뚝으로 치자면 천상 농사꾼이지만 그의 `글맛`은 씹는 맛이 짱짱하기로 소문이 났다.

박형진이 10년만에 <호박국에 밥 말아먹고 바다에 나가 별을 헤던>의 글을 고쳐 다듬고 새글을 보태 펴낸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소나무. 2005)에서 편집자는 그의 글맛을 이렇게 표현한다.

"찰지기로는 인절미같고, 허물없기로는 쑥개떡같고, 맛나기로는 짭쪼롬한 보래새우 젓갈같은 박형진의 글맛은 어디서 온 것인가는 그 살아 온 품새를 보면 알아 볼 만하다"

그의 글선생은 사랑방에 모여 나물 다듬으며 속닥거리던 어머니와 생초각시, 갈비이모요, 죽은 사람 관 짜주고 침 잘놓던 아버지요, 술 먹고 태봉이네 마당서 쌈질하던 동네 사내들이며, 도깨비 잘 나던 `숯구덩이 미친년 잔등`이란다.

농부가 된 철학자 윤구병은 이 책의 추천사 `가난이 힘이다`에서 "박형진의 글이 무섭기는 무섭구나. 글이 눈에 찰싹 달라붙기 무섭게 떨어지지 않는다. 지지리도 가난한 갯마을 뱃놈들 뚝심이 줄줄이 구불텅구불텅 신새벽 좆 서듯이 울근불근 솟는구나"라며 치사했다.

"바람벽 흙을 뜯어먹고 자랄만큼 지지리도 가난하게 살아왔고, 지금도 자식 넷을 낳아 기르면서 가난에 허덕이고 있고 앞으로도 가난에서 벗어날 싹수가 노랗고, 또 오기로도 가난하게 살겠다"는 윤구병의 말은 악담이 아니라 그 영혼의 싱싱함이 갓 잡아올린 변산바다 쭈꾸미같은 박형진에 대한 찬사다.

책은 도깨비불 날던 곳 `고향`, 고구마 두둑 쩍쩍 금이 가던 `가을`, 가마솥 콩물 줄줄이 흘러 넘치던 `겨울`, 쑥개떡 향 아른아른한 `봄`, 너벅너벅한 상추쌈 볼태기 터지는 `여름`을 구수한 글맛으로 담갔다. 무심코 집어든 책이라도 읽다보면 때론 코끝이 시큰해지고 때론 가슴 안쪽이 구들장처럼 천천히 뜨듯해진다.

"경쟁이 없는 사회, 돈이 필요없는 사회는 내가 오매불망하는 유토피아이다. 몸서리가 쳐지도록 무서운 노예같은 삶을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사람이라면 이런 풍요로운 세상이 펼쳐지는데 춤추고 노래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전목의 춤이며 이제까지 만들지 않은 전해 새로운 빵을 만들기 위한 맷돌질의 노래이다" - 박형진 마중글 `오매불망 내가 꿈꾸는 것` 중에서

(사진 = 출판사 소나무 제공) [북데일리 원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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