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책임 누구에게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책임 누구에게
  • 이동환 책전문기자
  • 승인 2009.02.11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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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글로브상 탄 영화의 원작...전쟁의 트라우마

[[북데일리] 2009년1월11일 LA에서 열린 66회 골든 글로브 상 시상식은 미녀 미남 배우들의 아름다움과 멋쟁이 경연장이었다. 매년 되풀이 되는 현상이지만, 여배우들이 어떤 의상을 입고 참가하는지가 사람들에게는 더 중요한 행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미키 루크와 케이트 윈즐릿은 골든글로브 남녀 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영화인 <바시르와 왈츠를>이 외국어 영화상은 받았다. 이 시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전투 중이었기에 이 영화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학살현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군인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 원인이 어떠하던지 이스라엘의 군사적 행동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당연히 그 땅의 주인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영토를 빼앗으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분쟁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원인은 종교라고 사람들은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보는 이유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갈등이 모두 종교문제인 것처럼 대외적인 발표를 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종교문제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사람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본능이다. 이 전쟁 역시 삶의 공간인 영토가 주된 원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은 전승국의 결정으로 2,000년 만에 자신의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땅에는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2000년동안 그대로 살고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이를테면 잘 살고 있는 남의 집 안방에 들어가 살게 된 셈이다. 그러니 자신의 안방을 빼앗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침입자인 이스라엘이 마땅치 않았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이 중동지역에 나라를 세운 이후 계속되는 갈등은 전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미국을 등에 업고 있는 이스라엘은 전투마다 승리를 했고, 따라서 자신의 영토를 늘려갔으며,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주변 나라들의 불만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종교, 인종문제 보다는 생존의 문제가 제일 급박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조국의 명령에 의해 전투에 참가하여 적이나 민간인을 사살한 이스라엘 병사들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한 국가가 자신들의 국민에게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라고 명령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명령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과 전쟁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실제 전투에서 자신이 적군을 죽이지 못한다면 자신이 죽으리라는 생각은 상식적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생존 본능은 기꺼이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는 데에 명분을 실어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 또한 공존한지 않을까. 게다가 군인이 아니라 무장조차도 하지 않은 민간인을 학살하게 된다면 그 죄의식은 당연히 커진다.

영화 <디어 헌터>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미군이 전쟁 후에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후유증으로 인해 인간성이 파괴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영화는 반전영화의 기수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 책 <바시르와 왈츠를>(다른. 2009)도 <디어 헌터>와 마찬가지로 전투에 참여해 사람들을 죽이는 과정에서 병사들이 입게 되는 정신적인 상처, 즉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이다.

책의 주인공이고 저자이기도 한 아리 폴먼은 2년 동안 매일 개 26마리가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하는 꿈을 꾼다. 이 괴로운 꿈에 대해서 그는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친구는 개의 수가 왜 26 마리냐고 묻는다. 그러자 주인공은 자신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으러 어느 마을에 갔을 때 벌어진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개들이 짖어댔고, 동료 부대원들은 사람을 쏠만한 용기가 없는 주인공에게 개를 쏘라고 했다. 그래서 주인공은 개들을 쏘기 시작했고, 개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 주인공이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없었다. 그러나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과거의 끔직한 기억들이 되 살아났다.

그 기억들을 완전히 되찾기 위해 주인공은 팔레스타인과의 전투에 참가했던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그들 모두 예전의 전투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만 가지고 있을 뿐 많은 부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왜 그들은 사람에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 전쟁에 대해서 기억이 없어졌을까? 주인공은 전쟁 트라우마의 세계적 권위자를 만난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끔찍한 장면에 대해서 기억이 없어지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말 주인공은 이 ‘방어 기제’ 때문에 오래전의 전투 기억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계속 만난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간다. 도심지로 행군하는 중 적의 저격병이 이스라엘군을 향해 총을 쏜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꼼짝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주인공의 친구인 프렌캘은 기관총을 들고 총알이 빗발치는 거리로 나가 기관총을 쏘기 시작한다. 프렌캘의 모습은 마치 왈츠를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기관총을 쏘고 있는 길거리 옆의 건물 벽에는 커다란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포스터의 주인공은 레바논 대통령 바시르 제마엘이었다. 그는 기독교도로 이스라엘과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암살을 당했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 원수를 갚기 위해 그곳에 갔다. 그곳에서 프렌캘은 바시르 포스터 옆에서 왈츠를 추는 듯한 모습으로 기관총을 쐈기에 이 책의 제목이 <바시르와 왈츠를>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갔다. 이미 팔레스타인 병사들은 그곳을 떠난 뒤였고, 그곳에서 난민들만이 있었다. 기독교 측인 팔랑헤당 민병대원들은 그곳에서 난민들을 살해한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 반인륜적 행위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히려 민병대가 난민들을 죽이기 쉽도록 조명탄을 쏘기 까기 한다. 살해당한 난민은 3천 명에 달했다. 그런데 더욱 끔찍한 부분은 희생자 가운데 어린이들과 부녀자가 절반을 넘었다고 하니, 이는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 였고, 이스라엘은 이 살인극의 공범이었다. 주인공은 이런 사건을 기억에서 없애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참혹한 기억을 찾았다. 그의 기억에 다시 살아나는 장면은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부녀자들의 모습이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은 ‘살인자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이성을 근본으로 한 법, 윤리, 사회적 제도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인 규범은 너무도 쉽게 무너진 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 목격하고 있다. 지구 어느 곳에서든 이러한 살인은 매일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언제 우리 인간들은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일어나고 있는 학살을 그만둘 수 있을까. 우리 안에 있는 천사의 모습이 악마의 유혹을 이길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 상황이 아니면 좋으련만....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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