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이런일이] 경이로운 기억력의 괴짜 천재
[책속에이런일이] 경이로운 기억력의 괴짜 천재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2.16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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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에 책 쓰고...19개 언어 구사한 일본학자

“앗!”

[북데일리] 일본의 어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천황 히로히토가 있는 자리였다. 한 통의 캐러멜 상자 때문이었다. 당시 천황에 올리는 헌상품은 오동나무 상자나, 그에 준하는 최고급 포장을 하는 게 예였다. 당시 '신민'의 눈으로 보면 ‘무식하고 겁 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은 미나카타 구마구스(1867년생), 이른바 괴짜 천재로 불리는 사람이다. 신간 <괴짜가 산다>(학고재. 2008)에 소개된 미나카타의 이력은 실로 경이롭다. 박물학자, 민속학자, 세균학자, 천문학자, 인류학자, 고고학자, 생물학자, 일본 최초의 생태학자, 재야학자, 환경운동가....전부 말하려면 숨이 찰 정도다.

미나카타는 신동이었다. 그의 어린 시절 취미는 필사와 암기. 무엇이든 베껴 쓰고 외우기를 즐겼다. 7살 무렵, 그는 실용사전인 <대잡서>와 그림을 곁들인 사전 <훈몽도휘>를 읽고 외웠다. 초등학교 시절엔 이웃집에서 백과사전 격인 105권짜리 <화한삼재도회>를 빌려 5년에 걸쳐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했다. 이 무렵 식물도감 <본초강목>도 베껴댔다.

그의 못 말리는 베끼기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한 번은 서점에 가서 40권짜리 전쟁 이야기책 <태평기>를 선 채로 외워 집에 돌아왔다. 옮겨 적기 위해서였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필사본 <태평기> 한 질을 묶어냈다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미나카타는 13살에 <동물학>이라는 책을 썼다고 전해진다. 영국의 여러 책을 참고하고, 한서와 왜서를 비교해 지었단다. 서문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우주의 물체 삼라만상에는... 실로 끝 가는 데가 없고...”

13살의 나이에 책을 쓴 것도 모자라, 우주와 삼라만상을 들먹이다니. 범상치 않은 재주에 기가 찰 노릇이다.

이토록 ‘비범했던‘ 그에겐 정규교육이 맞지 않았다. 수업은 늘 뒷전이고 개구리와 게를 잡아와 관찰하며 놀기에 바빴다. 그래도 입시학원 덕에 대학은 지금의 도쿄대학을 들어갔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끼는 못 버린지라, 낙제를 받고 결국 자퇴했다.

그의 재능이 꽃을 피운 건 외국생활을 하면서다. 미나카타는 “천하제일의 사나이라는 평판을 들으리라”는 결의와 함께 미국, 쿠바, 베네수엘라, 자마이카, 영국을 떠돌며 공부에 매진했다. 특히 영국 대영박물관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할 시기 그는 성큼 성장했다. <런던 발서>라는 52권의 필사노트를 완성했고(현재 미나카타 기념관에 보관), 천문학회 현상 논문 모집에 ‘극동의 별자리’로 1위에 올랐다. 그가 발표한 논문을 51개다.

미나카타가 일본에 돌아온 때는 1900년 9월이다. 와카야마현의 다나베에 정착한 그는 연구에 매진, 5년 동안 정리한 점균 표본을 대영 박물관에 기증하며 세계적인 점균학자로 이름일 알렸다. 61권에 이르는 <다나베 발서> 또한 썼다.

그는 1941년 세상을 떠났다. 그때까지 일본산 균류 4천 5백종을 채집해 1만 5천여 장의 컬러 도감(圖鑑)을 완성했다.

이런 휘황찬란한 생을 이력서로 쓴다면 어떨까. 실제 그는 이력서를 써봤다. 환갑 즈음이었다. 미나카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식물연구소를 갖기 위해 기부자들을 모았다. 그들에게 자신의 지난 삶을 이력서로 알렸다. 글자 수는 약 5만 5천자, 7미터 70센티미터에 달하는 두루마리 이력서였다. 이 정도면 ‘놀랠 노자‘라는 표현이 맞지 않을까.

하나 더 추가한다. 그는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칼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 19개 언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런던 발서>에는 다양한 언어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사진제공=학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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