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에이런일이] 생존이 버거웠던 거장 고흐
[책속에이런일이] 생존이 버거웠던 거장 고흐
  • 김대욱 기자
  • 승인 2008.12.09 0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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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함과 예술에 대한 열정 담은 편지

“다시 한 번 부탁함세. 기회가 닿는 대로 내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북데일리] 19세기 네덜란드의 어느 화가. 남루한 복장의 그는 친구에게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자신의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 달라고. 홍보가 목적이었다. 그림이 너무 안 팔려 늘 곤궁했던 그는 체면을 차리지 않고 속내를 털어놨다. “너무 애쓰거나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내심 친구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바랬다.

누굴까 그 화가는. 바로 고흐다. 후기 인상파의 대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의 방’,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등 수많은 명작을 남긴 거장이다.

고흐는 생전 지독히도 가난했다.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그 탓에 생활은 항상 어려웠다. 게다가 정신 질환까지 앓았으니, ‘이보다 더 불행할 수 없다‘는 그에게 딱 맞는 표현이었다. 오죽하면 ’비운의 화가‘라는 오명까지 안고 있을까.

신간 <반 고흐, 영혼의 편지2>(예담. 2008)에선 당시 그가 겪었던 궁핍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가 직접 쓴 편지를 엮은 서간집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수신인은 동료 화가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안톤 반 라파르트다. 그에게 고흐는 자신의 사정을 꾸밈없이 밝힌다.

“아는 사람들에게 내 작품을 보여달라고 부탁한 것은 언젠가는 그런 미술애호가를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이네. 그러지 못한다 해도 상관은 없네만 생활이 조금 더 어려워지겠지. 어쩔 수 없이 기회를 만들고, 이래저래 작품을 팔 수 있는 모든 길을 모색해 봐야겠지. 어쨌든 기회가 되는 대로 사람들에게 내 작품을 소개해 주게. 사람들이 내 그림을 경멸한다면 할 수 없지. 더 기다릴 수밖에.”

자신의 작품을 푼돈에 판 이야기도 들려준다.

“대가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네. 일곱 작품에 30플로린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껏 20플로린에 그쳤거든. 게다가 덤으로 질책까지 들어야 했으니...-중략- 나는 그림의 상업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대답했네. 판매업자가 그것을 상업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한다 해도, 거기에 반박하거나 이론을 제기할 의사도 없다고 했지.”

그렇게 그의 작품은 무시당했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했다. 편지에서 고흐는 생계유지를 삶의 의무라고 썼다. 울컥해지는 대목이다.

“내가 가격을 논하거나 그림들을 아무 대가 없이 판매상에게 주지 않는 것은 나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인간으로서 먹고 자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네. 물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할지라도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내 의무라고도 덧붙였지.”

생존 자체가 버거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히, 묵묵하게 외길을 걸었다. 이를 엿 볼 수 있는 구절이다.

“저들(화상, 미술관 지배인)은 대중의 나쁜 기호를 만족시키기에만 급급할 뿐이지. 어쨌든 우리로선 진실하고 정직한 자세를 잃지 않는 가운데 꾸준히 작업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네.”

예술가로서의 자세에 방점을 찍는 건 고흐가 의사에게 던진 말이다. 의사의 진단을 비웃었다는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의사의 진단을 비웃었네. 그의 충고가 틀려서도, 그보다 내가 자신을 더 잘 안다고 고집해서도 아니네. 그건 바로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고 있지 육체의 건강을 지키려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지.”

고흐가 시궁창 같은 현실을 마감한 때는 1890년 7월 29일이다. 자살이었다.

이제 그는 외로움과 가난에서 해방됐을까. 살아서 그림 한 장 제대로 못 판 고흐의 작품은 현재 값을 매기기 어려운 가치를 지닌다. 1990년에 경매에 나온 ‘의사 가셰의 초상’은 8,250만 달러에 거래된 바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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